정이현 소설가는 이 소설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세공된 열쇠를 닮았다. 필요불가결한 단문들로 이루어진 서사를 좇아 맨 끝에 다다른 뒤에야 독자는 눈을 껌뻑이다 이내 탄식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열쇠와 맞아떨어지는 자물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올해 등단 22년차를 맞은 편혜영 작가는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에 작가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쓴 단편들 가운데 성격이 유사한 8편을 골라 창작집으로 묶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어쩌면 스무 번’은 인물들이 머물던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시작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품집에는 2019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호텔 창문’도 수록돼 있어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은 주인공 ‘나’가 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시골로 이사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웃집이 300m 넘게 떨어져 있을 만큼 인적이 드문 마을이다. 어느 날 한 보안업체 직원들이 집을 찾아온다. 그들은 위험에 노출되면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회사와 계약할 것을 강요한다. 나와 아내는 왠지 모를 공포를 느낀다. 재산과 목숨을 지켜준다고 강조하는 그들이 다른 무엇보다 아내와 나를 불안에 휩싸이게 한다.
이처럼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외견상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폐쇄된 공간에 부려진 인물들을 그려낸다. 은근한 긴장감은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환기한다. 간결한 문장으로 그려낸 편혜영 특유의 물기어린 서스펜스는 인물을 둘러싼 이중의 조건, 아이러니한 상황과 맞물려 소설적 재미를 선사한다.
<문학동네·1만3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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