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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꽃이 진다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릴 뿐 꽃의 탓 아니로다

by 광주일보 2021.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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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강직하고 바른 처신 탓에 투옥을 당하고 좌천됐던 광주 사람 눌재 박상. 그의 시 ‘백일홍’에는 기묘사화의 아픔이 배어있다. 광주시 북구 매곡동 김용학 가옥 앞 백일홍. <광주일보 자료사진>

그는 단종의 양위(讓位) 소식을 듣고 방랑길에 올랐다. 그리고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 잠시 경주 금오산에 정착하기도 했으나 일평생 유람하다 무량사에서 병사했다. 어린 시절 신동으로 소문난 그를 세종이 직접 시험을 하고 비단 50필을 하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누구인가? ‘금오신화’와 ‘산거백영’의 저자이기도 하다. 바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다. 서슬이 시퍼런 시절 단종의 제사를 지냈으며 금오산 용장사에서 기거했다. 그곳에서 매화를 심어 정원을 가꿨다.

“눈길에 홀로 그대 찾아 지팡이 끌고 갔더니/ 그 참된 뜻을 깨달은 듯하다 다시 혼미해졌다./ 나는 도리어 매화의 부림을 받아/ 별이 비끼고 서편에 달이 지도록 서 있네.”

김시습의 호가 매월당인 것처럼, 그는 매화를 좋아했다. “무심한 매화에 이끌려 자신도 무심한 경지”에 들곤 했다. 매화에 관한 14수를 지은 연유다. 그러나 분재나 화분, 정원에 심은 매화에 대한 흠모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엄동설한과 찬바람에 흔들리며 피워낸” 매화를 높이 평가했다.

조선 선비 100인이 꽃에 대해 남긴 글을 토대로 쓴 책 ‘꽃과 운명’ 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년다산’, ‘꽃을 읽다’ 등의 저자인 차벽 씨가 썼다. 그는 선비들이 어떤 꽃을 사랑하고 어떤 운명으로 살았는지를 들여다본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꽃을 사랑한 옛 사람들의 삶을 철하기 시작”한 것이 책을 쓰게 된 연유다. 그러면서 저자는 선조들은 꽃을 관(觀)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단순한 간화(看花)가 아니라 독화(讀花)였다고 정의한다.

저자가 전국을 누비며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선비들의 시에는 매화, 연꽃, 국화,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순서로 많이 등장한다. 시조나 가사, 민요에는 복숭아꽃, 국화, 연꽃, 매화 살구꽃 순이었다.(참고로 현대시에는 장미, 해바라기, 국화, 목련, 코스모스, 진달래 순이다)

평생 강직하고 바른 처신 탓에 투옥을 당하고 좌천됐던 눌재 박상(1474~1530)에 관한 꽃 이야기도 있다. 복상중이라 기묘사화 참사를 면했던 그는 피해 입은 사람들을 구휼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주 사람인 그가 남긴 시에는 안목과 소신, 인간애가 담겨 있다. 서거정 이후 성현, 신광한, 황정욱 등과 함께 4가(4家)로 칭송될 만큼 뛰어난 문재를 지녔다.

정조의 눌재 시에 대한 상찬은 이목을 끈다. ‘청아하며 고고하고 담박하여 저절로 한없는 맛이 있고 후인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나아가 ‘당대 뛰어난 시인들의 장점을 다 갖춘 최고의 시인’이라 명명한다.

“…향기와 혼은 훈풍으로 돌아들어 깨어나고/ 고운 골격은 옥 이술 머금어 어여쁘다./ 푸른 물 서원에서 밝은 해에 우쭐거리고/ 푸른 술잔 북해 집에서 차린 술자리 빛낸다./가장 슬픈 건 해마다 꽃은 같은데/ 삶이 들쭉날쭉하여 지난해와 다른 것이라.”(‘백일홍’ 중에서)

꽃 곁에서 장수를 누린 이도 있다. 그는 김안로가 권세를 잡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바로 담양 출신 송순이다. 최초 가단인 면앙정가단을 결성하고 자연을 예찬했던 그는 평생 매화를 사랑했다.

“꽃이 진다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릴 뿐 꽃의 탓이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시새워 무엇하겠는가”(상춘가)

시에서 ‘꽃’은 을사사화 때 피해를 입은 ‘사림’이며 ‘바람’은 사화를 일으킨 윤원형 일파다. 송순은 자연과 함께 하며 그렇게 난세를 이겨냈다.

이밖에 ‘조선의 기개 높은 꽃이었던’ 신사임당, ‘국화를 가꾸며 개혁을 꿈꾼’ 김육, ‘매화와 대나무처럼 살다 간’ 성삼문, ‘비바람 속의 연꽃처럼 살았던’ 권근의 꽃과 삶에 얽힌 운명도 만날 수 있다.

<착한책 희고희고·2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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