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준비부터 정성 듬뿍 담고
장작불 가마솥 끊임없이 저어줘
좋은 엿 만들려면 꼬박 이틀 걸려
“쭈~욱 늘어나는 쌀엿처럼 새해에는 코로나 이겨내고 살림도 늘려 부자되시고 오래사세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6일,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쌀엿공방 ‘모녀삼대’ 공방은 꼬박 하루 걸려 만들고 있는 달달한 엿 냄새가 진동했다.
엄마 윤영자(82)씨에게 쌀엿 만드는 비법을 배운 최영례(50)가 아궁이를 떠나지 않고 지킨 지도 벌써 수 시간째다.
조청이 될 때까지 가마솥에서 졸이는 시기에 잠시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금세 넘쳐 버리기 때문이다. 색깔이 누런 갱엿으로 변할 때까지 4~5시간을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꼬박 이틀, 48시간이 걸린다는 게 윤 할머니와 최씨 말이다.
한나절 이상 불려 놓은 쌀로 고두밥을 찌고 엿기름과 섞은 뒤 이불을 둘러 씌워 10시간 가량 발효시켜 식혜를 만든다. 식혜가 완성되면 물과 찌꺼기를 분리하는데, 이른바 ‘엿밥’을 짜내는 과정이다. 그 다음엔 조청이 될 때까지 가마솥에서 졸인다.
이 때 아궁이에서 장작을 때 중간 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보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이렇게 4시간 가량을 고면 색깔이 누런 갱엿으로 변해간다. 이후부터는 엿을 만드는 작업 중 가장 중요한 시기로, 갱엿의 상태가 무른지 된지를 살피는 작업이다.
나무주걱으로 끊임없이 저어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이 날라가고 점도가 생길수록 ‘주걱질’ 하는 게 힘들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시기를 놓치면 엿이 질겨지는 만큼 ‘오줌이 마려워도 참아야 한다’는 게 최씨 이야기다.
나무주걱으로 한 움큼 떴을 때 일직선으로 곱게 흘러내리면 좋은 상태라고 한다. 식힌 갱엿을 온도와 습도를 맞춘 방 안에서 두 사람이 100번 가량 잡아당겨 바람(수증기) 넣는 작업을 거치면 비로소 ‘흰 쌀엿’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쌀엿은 먹을 때 바삭바삭해 입안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먹고 나서도 입 안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
최씨는 “비가 와 습도가 높거나 너무 더운 날에는 엿 맛이 떨어진다”면서 “춥고 건조한 12월부터 2월에만 엿을 만드는 게 이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 어머니 윤영자씨가 엿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새벽 2시부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과거 쌀이 귀해 정부가 엿을 만들지 못하게했던 시절에 하던 버릇 때문이라고 했다.
흰 쌀이 고두밥을 시작으로 붉으스름한 조청, 검은빛이 도는 갱엿을 거쳐 다시 흰 쌀엿이 되기까지 48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물론, 쌀엿에 들어가는 재료(쌀·엿기름·생강·참깨)까지 직접 키워 만드는 것을 포함하면 ‘일년 농사’나 다름없다. 그나마 대부분의 과정이 일일이 사람 손을 타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보니 엿가락을 길게 뽑아내려는 사람들도 찾기 힘들어졌고 가족에게도 선뜻 맡기지 못한다.
최씨가 최근 엄마를 돕겠다며 나선 딸 김청희(26)씨를 대견해하는 이유다. 김씨는 우선 홍보와 택배 등의 부수적인 일을 돕고 있다.
최씨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데도 알아주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사뭇 섭섭하다고 했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다보면 그을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식품위생법만 강조하면 서운하다”고 했다.
힘들게 작업한 엿을 줄 서서 사가는 고객을 보는 맛도 ‘코로나19’로 사라지면서 기운도 빠진다고 한다. “맛있어서 또 왔어요”, “이 집 엿 덕에 우리 아들이 최연소 공무원에 떠억 붙었다니까요” 등의 말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이마저도 듣기 힘들어졌다는 것.
창평쌀엿은 조선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이 창평지역에 낙향해 지낼 때 동행한 궁녀들이 아낙네들에게 전수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진상품으로 올릴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설 명절 즈음이면 엿을 만드는 냄새로 온 마을이 ‘달달’했고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쌀엿을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최씨는 “쌀엿을 새해에 먹으면 1년 내내 살림도 늘어나고 오래 산다”고 귀뜸했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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