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공공의료기관 필요성
한국 공공의료 기관 비율 5.5%
OECD국가 평균 11분의 1 수준
10만명당 치료 못받아 죽은 환자
전남이 서울보다 8명 이상 많아
지역간 보건의료 불균형 심각
국가적 재난·재해 대응도 취약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연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공공의료시설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넘는 기간동안 광주·전남지역 확진자 치료는 주로 국공립 거점병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맡았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뿐만 아니라 과거 등장했던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 등 감염병의 사례를 돌이켜 봤을 때, 전세계적인 감염병은 언제라도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감염병 유행을 포함한 국가적 의료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공의료원 설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왜 공공의료인가=건강보험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는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을 포함, 공공의료의 5가지 역할론이 제시돼 있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국가적 재난, 재해, 응급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염병 및 재난대비 의료기관으로서 공공의료기관으로 변모하는 것’을 공공의료의 주된 역할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또 기존의 공공의료원이 민간 기피 진료 분야 및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진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민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병원으로서 공익적인 조정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또 수평적으로는 지역적 의료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수직적으로는 지역거점 의료기관의 역할을 수행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합리적 의료전달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민간의료가 전체 의료시장의 94%=2019 보건의료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다. 2019년 12월말 기준 공공의료 기관은 221개 기관으로 전체 의료기관 4034개소의 5.5%이며, 공공병상 수는 6만 1779병상으로 전체의 9.6%에 불과한 수준으로 민간의료 시장이 전체 의료시장을 잠식한 상태이다.
국가간 비교에서도 우리의 공공의료 위상은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OECD국가 평균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65.5%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5.8%에 불과한 11분의 1 수준이다. 또한 병상규모를 기준으로 비교해도 OECD 평균 공공의료기관 병상이 89.7%인 반면, 우리나라는 10.3%인 9분의 1 수준으로 공공의료의 취약성이 데이터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같이 공공의료 비율의 격차가 큰 이유는 공공의료로 투자를 촉진할 보건의료정책이 경제개발정책보다 오랜기간 후순위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보건의료 정책은 항상 정부의 다른 정책보다 뒤처져 있었던 탓에, 예산 규모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정책의 목표와 전략도 부실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부족한 의료 공급을 민간이 주도하고, 의료수요는 정부가 통제하는 상호모순적 상황이 동반되면서 민간과 정부 간의 불신도 깊어진 역효과마저 낳았다. 전문가들은 공공과 민간 의료 기관을 모두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의료 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 아니지만, 결국 절대적인 수치에 안주하다보니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치료받지 못해 죽는 환자, 광주가 서울보다 10만명당 7.8명 많아=의료 전문가들은 공공의료원이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의료 비중이 매년 늘어날 경우, 조만간 공공의료가 설 입지가 없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결국 민간의료 팽창은 고스란히 국민의 손실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공공의료가 취약해 발생되는 문제로 첫째, 의료자원의 수직적·수평적 불균형을 꼽는다. 민간의료는 공공성보다는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성에 기반을 둔다. 이로 인해 국가적으로 지역과 진료과목의 균형적 안배가 떨어지며, 1·2·3차(수직적) 의료기관 간 진료기능의 중복, 중첩을 막기가 힘들다. 이 같이 병원마다 비슷한 진료시스템과 의료서비스는 지나친 경쟁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유명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을 가속화시킨다. 이로 인해 대형병원들 사이에서도 의료시설과 의료장비의 공급과잉이 발생된다.
더욱 큰 문제는 비수도권,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의 의료자원이 크게 부족해지는 수평적 불균형에 있다. 2019년 서울특별시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1명인 반면 광주 2.4명, 전남은 1.7명으로 서울과 전남을 비교할 때 1.8배 이상의 격차가 발생됐다. 이러한 활동의사 수 격차는 사망률 격차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국민보건의료실태 통계(2018)에 따르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한 사망을 보여주는 지표인 ‘치료 가능한 사망률(amenable mortality rate)’에서 2015년 기준 서울의 치료가능한 사망률이 10만명 당 44.6명인 반면, 광주는 52.4명, 전남은 54명임을 알 수 있다. 광주와 전남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람이 서울에 비해 더 많았다는 얘기다.
◇공공의료의 부재, 긴급 진료체계의 구축 제한=공공의료의 부족은 국가적 재난이나 재해, 응급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안전망을 취약하게 만든다. 민간의료 기반이 강하고 사회적 다윈주의가 조장될수록 국가적 재난, 재해 응급상황에 대한 대응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책임의 주체가 모호해진다.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전염병 외에도 생물·화학적 테러, 원자력 사고 등 예기치 못한 국가적 재난 및 위기에 직면했을 경우, 민간 중심 의료체계에서는 중앙집권적, 독자적, 계획적인 긴급 진료체계의 구축이 어렵다. 또한 민간병원의 기존 입원환자를 강제적으로 퇴원시키고, 그 대신 감염병 환자를 격리수용하는 등의 행정상 즉시강제에도 애로사항이 많기 때문에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의 추가 발생은 항상 잠재돼있다.
또한 현재 광주·전남의 300병상 이하의 중소형 공공의료원이 가지는 시장지배력은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하기엔 한계가 있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국립암센터와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있어 지역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민간의료기관인 동국대학교 일산병원과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은 이를 의식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고양시와 달리 지역적 의료격차가 이미 크게 벌어진 지역에서는 공공의료원의 양적 설립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균형발전은 불가능하다.
이제 공공의료기관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하고, 공공의료 중심의 의료전달 체계 구축으로 의료비를 절감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은 국내 의료산업을 활성화하고, 표준진료를 통해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할 뿐만 아니라 진료비 심사 및 의료 질 평가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감소시켜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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