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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리일천 ‘시간의 기억’전 “광주미술 만들어간 134명 작가 사진에 담았죠”

by 광주일보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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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사진전시관 21일까지 전시
2006년부터 지역 미술인 촬영…지역자산으로 기부 예정
“광주 화단 역사 기록…작가 내면까지 담아내려 했죠”

리일천 사진작가가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열고 있는 ‘시간의 기억’전 세번째 섹션 ‘광주 미술인 100인전’은 광주 화단의 역사이기도 하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고(故) 이돈흥 선생, 광주리에 담긴 석류를 그리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강연균 화백, 싱그러운 미소의 설박 작가.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모습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일천 사진작가가 광주시립사진전시관 초대전으로 ‘시간의 기억’(21일까지)을 열고 있다. 3개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건 ‘광주미술인 100인전’이다. 대형 전시장 양 쪽 벽면을 가득 채운 134명의 작가들은 ‘광주 화단(畵壇) 역사’의 한 단면이다. 그의 앵글에 포착된 작가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롯이’ 작품 활동에 매진해온 그들의 이력이 보이는 듯도 하다.

 

화가가 꿈이었던 이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사진을 시작하며 예술의 세계로 들어섰다. 사진을 찍은 게 올해로 36년째, 전업작가로는 25년의 시간을 넘어가고 있다. 이 작가는 2006년부터 지역 미술인들을 앵글에 담아왔다. ‘10년 작업’으로 시작한 일은 어느덧 15년을 넘어섰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어갈 ‘평생의 작업’이 됐다. 그는 ‘스타 작가’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싶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후배들의 멋진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 역시 자신이 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40세 이상 작가를 촬영한다는 원칙을 변경해 몇년전부터 이세현, 하루 K, 설박 등 젊은 작가들을 찍고 있는 이유다.

 

“작가들과 교류하며 이들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누군가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세상은 알려진 작가에 주목하지만, 광주 화단이 이처럼 풍성해질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작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진실된 마음으로 숙명처럼 작업을 해오는 그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가는 고교 동창인 이기원 조각가를 비롯해 한희원·송필용 작가등과 교류하며 마음을 털어놓았고 가까운 이들부터 촬영했다. 이후 공공 기관 지원을 받지 않는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고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내 신념을 지키겠다고 늘 마음을 다 잡았다. 초창기 작업은 힘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전적인 부분이었고 작가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묘하게 ‘을’이 되는 것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4년간은 묵묵히 촬영에 임했다. 사람들은 “리일천은 늘 현장에 있다” 고 생각했고, 신뢰와 믿음을 주기 시작했다. 인연이 이어지면서 주변의 소개로 새로운 일도 하게 되고, 작업 폭도 넓어졌다.

 

사진작가 리일천

 

그가 14년간 작가 등 문화 예술과 관련해 찍은 사진은 60만컷에 달한다. 10년이 지난 후, 늘 힘이 돼 주었던 아내와 대화 중 “역사에서 10년은 시간도 아니다. 좀 더 해봐야겠다. 작가든 나든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작업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웃기도 했다.

그는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나 작업모습만을 앵글에 담지 않는다. 해당 작가의 행사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철수한다. 늘 ‘5분 대기조’로 살아야했고 그것은 ‘기록작업’의 운명이었다. ‘지속 가능한 작업’을 위해 그는 변화를 택했다. 최근에는 휴대폰 등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아 굳이 전시 오프닝 등 ‘모든 것’을 촬영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행사 전후 작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실에서의 모습을 좀 더 심도있게 담으려한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찍는, 성숙하고 진중한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전시장에서 인상적인 건 작가들의 모습을 담은 134개의 앨범이다. 여기에 실린 사진만 4000장이다. 이번에 자신의 앨범을 처음 본 작가들은 감회에 젖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진에는 마음이 담겨야합니다. 겉모습 뿐 아니라 내면의 정신을 담고 있어야하죠. 대상을 찍을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누가 봐도 그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하는 겁니다. 아카이브 작업이라는 게 그냥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게 아니예요. 작가들은 자기 언어가 있어요. 그게 표정으로, 동세로 나타나는 거죠. 이번에 앨범을 본 작가들이 가장 많이 한 말 이 ‘이런 모습을 언제 찍었어요?’라는 겁니다. 숱하게 대화를 나누며, 꾸준히 그 사람을 관찰하며 담은 사진들이죠.”

전시에서는 도구와 빛을 이용해 시간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만나는 ‘존재와 시간’,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공간의 전위’ 섹션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 32회 개인전을 열었고 내면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저에게 가장 지옥같은 일은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는 거였어요. 제가 말만 앞서는 사람이 돼버리면 새로운 후배의 등장을 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더 열심히 하려했습니다. 또 제가 기록한 작가들에게 누가 되면 안된다는 것도 늘 부담이었죠. 그들이 제가 찍은 사진으로 기억될 수 있으니까요. 제 작업이 광주 미술사의 작은 기록이자, 아카이브로 남는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똑같은 자료를 작업실 등 세 곳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작가들을 촬영한 모든 사진을 광주의 아카이브로 조건 없이 사회에 내놓을 예정이다.

다음 작업은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주의 당산나무를 찍어보려 한다. 또 원로작가들의 기록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또 하나, 수많은 컷 중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작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의 최종 선별작업도 남아 있는 숙제다. 리일천은 끊임없이 광주의 작가를 기록한다. 그의 앵글을 통해 작가들은 생명을 얻고, 광주 미술계는 역사를 갖는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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