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박완서의 부엌
호원숙 지음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맛없는 건 절대로 안 먹는다”(박완서 산문집 ‘호미’ 중 ‘음식 이야기’)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가 살던 ‘노란집’을 물려받은 딸은 엄마의 부엌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딸은 다섯 살 손녀가 “할머니, 뭇국에 밥 말아줘”라고 말할 때, 엄마의 소설 ‘그 여자의 집’에 등장하는 한 대목을 떠올리며 ‘늦가을의 무’에 대해 생각한다.
세미콜론이 펴내는 ‘띵’ 시리즈 7번째 책 ‘엄마 박완서의 부엌-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은 고(故) 박완서 소설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그리운 엄마의 10주기’에 펴낸 에세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느 날에는 뭉근하게 데워졌다가 어느 날에는 보글보글 끓기도 했을”(편집자 김지향) 저자는 책 갈피마다 엄마를 비롯해 가족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추억과 엄마의 주옥같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직, 딸이라서 가능한 박완서문학의 코멘터리’인 셈이다.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딸은 지금 자신이 엄마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가족, 지인들과 또 다른 추억을 하나 하나 쌓아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소박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기억하는 젊은 날의 엄마는 ‘조선 요리제법’이라는 오래된 요리책을 ‘전쟁과 평화’, ‘죄와벌’ 등과 함께 두고 읽는 모습이다. 큰 솥에 메주콩을 삶거나 숯불화로에 섭산적을 굽는 요리를 하고, 틈틈이 ‘현대문학’이나 ‘사상계’를 보면서 잠시 누워 있던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딸은 마당에 올라오기 시작한 머윗잎을 따서 쌈을 싸 먹을 땐 엄마의 이런 문장을 떠올린다. “새로 지은 밥을 강된장과 함께 부드럽게 찐 호박잎에 싸 먹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움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흐뭇하고 나른해진다.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또 엄마의 첫 소설 ‘나목’에 등장하는 만두에 대한 글과 함께 언제나 축제 같았던 집안의 만두 빚는 모습에 대해 들려주며 소설 ‘그 남자의 집’에 등장하는, 민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떠올리며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민어 요리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나박김치, 비빔국수, 대구, 느티떡 등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오래된 추억을 함께 소환한다. <세미콜론·1만12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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