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윤 지음
지난해 처음 알게 된 여성 작가가 있다. 스웨덴 출신의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낯선 이름의 작가인데, 다큐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이 개봉해 작품과 일대기를 찾아보게 됐다. 그녀는 추상미술의 대명사로 꼽히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보다 앞서 추상작품을 그린 이였다. 하지만 미술의 변방으로 불리는 북유럽 작가에, 여성이였기에 그는 주류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림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작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 20년 동안 대중들에게 작품을 보이지 말라. 나의 작품을 미래에 기증한다.” ‘성전을 위한 그림 시리즈’ 등 세상이 그녀를 알아본 데는 42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6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2018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을 통해서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이야기는 신간 ‘여자의 미술관-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예술가들’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다. ‘여자의 미술관’은 저자가 오랫동안 눈여겨 본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위로와 도전과 용기를 전하는 책이다. 이화여대 회화과,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거쳐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 현대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하윤은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등을 썼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 미술가는 모두 15명이다. 프리다 칼로, 조지아 오키프, 케튼 콜비츠 등 친숙한 이름들도 있고, 소니아 들로네, 메리앤 노스 등 조금 낯선 이름도 보인다. 특히 1920년대 결혼한 여성으로 작품활동에 매진했던 정강자, 정찬영 등 한국 작가의 ‘발견’이 반갑다.
교통사고 때문에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하고 평생 척추 받침대를 하고 살아야했던 프리다 칼로는 미술사 속 ‘고통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뚜렷한 예술관을 만들어갔으며 마지막 작품으로 ‘삶이여, 만세(Viva La Vida)’라는 멋진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책에서는 평생 환각 증세에 시달렸고, 지금도 병원과 건너편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쿠사마 야요이, 신경쇠약, 자살 시도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작업을 통해 삶을 긍정한 후 미술이 갖고 있던 치유의 힘을 믿고 많은 사람과 나누려 한 ‘니나’의 작가 니 키드 생팔도 만날 수 있다.
그밖에 팝 스타 존 레논의 ‘아내’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궈간 오노 요코, ‘누군가의 여인’이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 굳건히 자리한 조지아 오키프,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지켜낸 마리 로랑생, 거대한 거미 설치 작품 ‘마망’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루이스 부르주아 등도 소개된다. <북트리거·1만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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