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이후 집에 대한 변화된 생각들
머무는 공간 넘어 ‘만능 공간’ 방송·책 눈길
다양한 스토리 ‘집’ 소개, 집 보는 재미 ‘쏠쏠’
누군가의 집에 가면 집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집안 구석구석 담겨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에도 마음이 간다. 규격화되고 고정화된 아파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런 기분은, 집주인이 꿈을 담아 지은 단독주택을 찾았을 때 조금은 부러움 섞인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음악과 요리를 좋아하는 A의 집도 그중 하나다. 10여년전 소박한 집을 지은 그에게서 지난해 여름 메일이 왔다. 자그마한 공간을 새로 마련해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8년 오랜만에 그의 집을 찾았을 때도 변화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집 뒤편 특이한 지형의 자투리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본격적인 ‘음악감상실’을 만들었고, 우리는 이 곳에서 원없이 음악을 들었었다. 이번엔 야외 음악 감상 공간을 또 하나 만들었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사진으로만 구경한 상태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나눌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에게 요즘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좋아하는 이들과 모여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집은 그렇게 계속 변하고, 자라고 있다.
오래 전 무등산 자락에 집을 지은 B는 건축가의 제안으로 마련한 ‘편지 쓰는 방’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지에 대해 들려줬다. 수 십년 아파트 생활을 접고 낡은 양옥집을 고쳐 사는 C는 무엇보다 ‘푸른 색’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베란다를 만들고, 자투리 공간들을 작은 정원처럼 꾸몄다. 올해는 반려식물을 키우며 코로나의 지난한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요즘 ‘집’이 화두다. 물론 이런 흐름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삶터’의 의미를 넘어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돼왔다. 집은 투기의 대상이 된 지 오래여서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집으로 어떻게 돈을 벌까’ 궁리한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중이다. 현대인들은 삭막한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기 어렵다.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광주 아파트 비율은 78.9%(51만000채 중 40만6000채)로,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세종시를 제외하고 가장 높다. 광주 총가구 57만5000가구 중 아파트는 37만1000가구(64.4%)에 달한다.
◇살아 숨쉬는 집, 진화하는 집
최근에 불고 있는 ‘집’에 대한 관심은 조금 방향이 다르다. 내 취향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런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내가 사는 공간을 내가 설계하고 싶다”는 건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가는 터라 쉽게 엄두를 내기는 어렵지만 모두 한번쯤은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이다.
특히 올해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19는 ‘집’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은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을 넘어섰다. 이제 사무실도 되어야하고, 아이의 교실도, 놀이터 역할도 해야하고, 소박한 문화 공간이 돼야한다. 또 집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집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게 방송 프로그램이다. EBS ‘건축탐구-집’은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시즌 3을 넘어가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단독주택을 주로 설계하는 노은주·임형남 부부를 비롯해 여러 건축사들이 전국의 눈에 띄는 집을 소개한다. 지난 가을 시작한 JTBC의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성시경, 송은이 등 연예인과 김주원 건축가 등이 참여해 다양한 집을 소개한다.
오는 6일 첫방송을 시작하는 SBS ‘나의 판타집’은 출연자가 평소 로망으로 꿈꾸던 ‘워너비 하우스(판타집)’와 똑같은 현실의 집에서 살아보면서 자신이 꿈꾸는 판타지의 집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담은 관찰 프로그램이다. 박미선·정성규·유수영과 스타 건축가 유현준이 진행을 맡았다. 그밖에 스타들이 강원도 양양에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디스커버리채널코리아의 ‘땅만빌리지’, 유명건축가들이 도심의 빈집을 활용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빈집살래’ 등도 방영중이다.
‘집’ 관련 책들도 출간되고 있다.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작은 집 큰 생각’, ‘집으로 말하는 인문학’, ‘살고 싶은 집’ 등 집과 관련된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으며 아파트, 한옥 생활을 거쳐 3층짜리 협소주택을 짓고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맛깔스런 글로 풀어낸 정성갑의 ‘집을 쫓는 모임’, 집 한채를 지은 과정을 담은 건축가 김정훈의 ‘내가 살고 싶은 집 주향재’ 등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에 읽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 인상적이다. 건축가 이일훈과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이 ‘잔서완석루’를 지으면서 나눈 이메일 80여통을 엮어 만든 책이다.
그밖에 최근에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만을 중개하는 건축 중개업 ‘홈쑈핑’도 사업을 시작했고, 4년차 건축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심쿵 건축-진짜 건축가가 짓는 게임 속 건축이야기’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집과 16평 협소주택 등을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세상의 모든 집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집은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고 수많은 나이테를 만들어가며 진화하고 변화한다. 누군가는 집을 ‘소우주’라고도 했다.
올 한햇동안 살고 싶은 집, 꿈꾸는 집, 무엇보다 이야기 있는 집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진행한다. 시리즈에서는 건축가의 설계를 통해 새롭게 지은 집부터 한옥 , 농가 등 기존 형태를 개조한 집, 건축주가 직접 지은 집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집을 특별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소개하려 한다. 단독주택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공동주택의 변화까지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
우선 2021년 25회를 맞는 광주시건축상 수상작 가운데 주거 부문 수상작을 소개하는 것으로 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한다. 지역 건축사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집 소개와 더불어 타 지역의 의미있는 집도 찾아 떠날 계획이다.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또 다른’ 집이다. 이야기가 있는 작업실 공간도 담아보려한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이가 쓰는 글이라,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함께 공부하며 궁리해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
‘집’에 대한 시리즈를 한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파트값이 너무 오르다 보니 아예 단독주택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고, 땅을 밟고 싶어 집을 지어볼까 생각중이라는 이도 있었다.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코로나 19 사태 이후 개인주택 설계 의뢰가 많이 늘었고, 건축주의 연령대도 낮아졌다고 한다.
사실, 집을 짓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당장 내 집을 짓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집에 담긴 삶의 철학과 이야기를 접하며 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언제가 마련할지도 모를 ‘나만의 집’에 대한 꿈을 간직하면서.
‘건축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공간을 조직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던 고(故)정기용 건축가의 삶을 다룬 다큐 ‘말하는 건축가’에 등장하는 춘천 자두나무집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집이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꼭 소개하고 싶은 집이 있었다. 2년전 만난 책 ‘안녕, 동백숲 작은 집’에 등장하는 농가다. 젊은 부부가 장흥 동백숲의 낡은 집을 고쳐 살았었는데, 이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다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여서 아쉽다.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집’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그리고 당신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을 찾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신 분은 이메일(mekim@kwangju.co.kr) 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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