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7)
한복 바느질 하던 어머니 “한 우물 파야 한다” 말씀 늘 마음에 새겨
‘우리옷 사랑회’ 초대회장·광주한복협동조합 설립 ‘한복 부흥’ 꿈 꿔
“저는 평생 한복 관련 일을 해왔습니다. 한복에는 일을 할수록 매력에 빠져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의관정제’라는 말이 있는데, 한복을 입으면 스스로 생각과 행동에 조심을 하게 되지요.”
‘아씨주단’ 박우근 대표에게선 반듯한 인상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한복 일을 해오다 보니 몸에 밴 듯하다.
광주 사람이라면 ‘아씨주단’이라는 상호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봄 직하다. 아씨와 주단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양반 규수라는 느낌도 담겨 있고, 누구나 들어도 친근한 느낌”이 좋아 지금의 상호를 짓게 됐다.
“아내가 아씨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해서 지금의 상호가 되었어요. 한복과 아씨, 주단과 비단은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관계입니다.”
전주 출신인 그가 한복 일에 뛰어든 것은 어머니의 소개로 주단점에 첫발을 내디디면서였다. 당시가 1974년이었다. 처음에는 고객 응대를 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차츰 한복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면서 일 또한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얼마 후 좀 더 ‘큰물’에서 일하고 싶어 도매상에게 서울로 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더니 “광주가 규모도 크고 한복이 많이 활성화돼 있다”며 충장로를 추천받았다고 한다.
아씨주단의 시작은 1989년 충장로4가 대광라사(당시 화니백화점 별관) 빌딩에 한복점을 열면서였다.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기까지 모두 네 차례 이전했다.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슨 일을 하든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한복업에 매달렸다.
“한복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제게는 익숙한 장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가 옥양목을 풀어 다림질한 옷을 입고 시내 출입을 하셨어요. 아마도 그러한 영향이 우리옷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 대표의 한복 사랑은 각별하다. 1997년 ‘우리옷사랑회’ 초대회장을 맡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한복전시회를 열었다. 이후로 한복 관련 패션쇼와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한때는 광주대에서 한복 관련 강의를 하며 우리옷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시대 흐름과 맞물려 한복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한복인 스스로 소재와 디자인 개발에 힘쓰고 본래 의미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통한복은 물론 시대 조류에 따라 세미한복 등 디자인과 색상 개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5년 전부터 우리옷사랑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광주한복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공동 구매와 판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판로를 개척하자는 취지지요.”
박 대표는 조합 이사장까지 겸하고 있어 적잖이 바쁘다. 이처럼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고 따라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오늘의 아씨주단은 아내의 헌신이 없었으면 존립할 수 없었다. 뒤에서 말 없이 내조를 해준 아내에게 공을 돌린다”며 웃었다.
“충장로가 호황이었을 때는 들고나는 손님들로 북적거렸죠. 지금은 예전만 못 하지만 상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은다면 분명 제2의 충장로 번영은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고요.”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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