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5)]
서울 출신…해외 사업하다 광주에 매료돼 1989년 정착 가게 열어
인테리어 차별화·인터넷 쇼핑몰 연계…발빠른 변화가 장수 비결
김충현(71) 대광악세사리 대표는 일흔이 넘었음에도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발빠르게 새로운 시장과 마케팅 방법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광주 동구 충장로 5가에 있는 ‘대광악세사리’ 가게에는 그 철학이 오롯이 묻어있다. 가게에는 귀걸이, 반지, 목걸이를 넘어 스카프, 장갑, 벨트, 지갑 등 잡화까지 들여놓아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취급하는 상품만 1000여종, 원가로만 1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새로움’과 ‘변화’는 그가 27년 동안 가게를 지켜 온 원동력이다. “백열전등 켜놓고 일하던 시절”인 90년대부터 가게 인테리어에 2000~3000만원을 들이고, 전산 시스템을 활용해 전자 영수증을 빠르게 도입했다. 최근에도 인터넷 쇼핑몰과 연계해 전국에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착용하는 악세사리가 다르듯이, 마케팅 흐름을 파악하고 따라잡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잘 관찰하고 가게에 접목시켜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게 오너의 역할이죠.”
서울 출신인 김 대표는 1989년, 불혹에 광주로 터를 옮겼다. 젊을 때부터 건설업과 무역업 등을 해 왔던 그는 31살 때부터는 아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생활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니, 하나 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취업 비자를 계속 갱신하는 것도 피곤하고, 아이들 장래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마침 88올림픽이 열리는 걸 보고 온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죠.”
떠돌이였던 그가 광주에 정착한지 올해로 꼭 31년, 이제 광주는 그가 살면서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다.
그가 광주행을 결심한 건 80년대 격동의 시기를 보낸 뒤 터져나왔던 광주 사람들의 ‘혼’ 때문이었다. 그는 1989년 1월 우연히 무등경기장으로 해태타이거즈 야구 경기를 보러 간 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광주 팬들이 경기 내내 목청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야구장에서 이런 노래가 나올까 싶으면서도 광주의 아픔을 담은, 가슴을 울리는 뜨거움이 느껴졌지요. 그 날부터 광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귀국은 했으나 마땅한 일이 없던 때, 그는 악세사리 일을 그만둔 아내 친구로부터 100만원어치 악세사리 재고를 구입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충장로에 ‘대광쥬얼리’라는 상호로 가게를 차리고 준보석(다이아몬드·에메랄드·사파이어·루비를 제외한 모든 보석)을 전국에 도매하는 일을 했다. 이후 1993년 ‘대광악세사리’로 상호를 변경하고 무역업을 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가게를 발전시켰다.
나눔에도 적극적이다. NGO 밝은사회 국제클럽을 통해 뇌성마비 센터에 매달 1만원씩, 30여년 가까이 기부를 해 왔다. 팔리지 않고 이월된 악세사리·잡화 상품들은 교회, 양로원, 시설 등에 꾸준히 보내고 있다.
“제 나눔엔 계기가 있어요. 외국 생활을 하던 중, 큰 딸이 많이 아픈 적이 있어요. 그 때 보건소에서 만난 인도 출신 의사가 ‘뇌성마비일지도 모른다’며 사례도 받지 않고, 8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병원까지 데려다 줬었죠. 저도 그 의사처럼 늘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현재 대광악세사리는 김 대표와 아내, 아들, 딸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 기업이다. 김 대표는 “일단 아들, 딸이 사업을 물려받아 가게를 잘 이끌었으면 좋겠다”며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충장로를 넘어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광악세사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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