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이선 지음
“우리의 속담이나 사자성어는 옛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지혜와 통찰이 담긴 절묘한 표현으로 많은 부분이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자연현상을 빗대어 인간사를 비유해왔습니다. 식물도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며 생로병사를 겪습니다. 사자성어 중에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거나 교활함을 경계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식물세상에서는 그러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인간세상보다 더 정직하고 공평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께서는 ‘남을 보고 깨우치거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제는 ‘나무를 보고 깨치거라’로 들립니다. 이래저래 식물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본문 중에서)
나무도 프리허그를 한다. 무슨 뜻일까? 나무끼리 서로 포옹한 듯 붙어 자라는 연리지(連理枝)를 일컫는다.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보인다. 부모와 자식의, 부부의, 또는 연인이 끌어안고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중국 후한 말에 효성이 지극했던 채옹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가에서 시묘살이를 했다. 무덤가에 자라던 나무가 언제 하나의 나무로 되었다. 아울러 백낙천은 시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바라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바란다”고 노래했다.
식물들의 사는 모습을 인간사회와 연계해 사자성어로 풀어낸 책이 발간됐다. 저자는 “소나무의 수관들이 서로 맞물려 가지를 뻗은 모습에서 ‘누울 자리를 봐가며 발을 뻗는다’는 속담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의 책 ‘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는 식물이 인간에게 던지는 24가지 화두를 담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식생 및 입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전문위원을 역임한 전문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진짜 꽃과 가짜 꽃으로 구분된다. 가짜 꽃은 생식기능이 없는 무성화, 중성화라고 한다. 진짜 꽃과 가짜 꽃이 피는 식물은 대개 진짜 꽃의 크기가 작아 곤충들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진짜 꽃 옆에 이보다 큰 가짜 꽃을 피워 곤충을 유인한다.
저자는 진짜와 가짜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수상개화’(樹上開花)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를 소개한다. 유비가 조조의 군대에 쫓길 때, 장비가 조조를 막기 위해 계책을 세웠다. 병사가 부족하지만 많이 보이게 하기 위해 말 꼬리에 나뭇가지를 매달고 달리게 했다. 자욱하게 먼지가 이는 모습에 수많은 병력이 있다고 착각한 조조의 군대는 꽁무니를 뺐다.
이는 가짜 꽃으로 곤충을 유인하고 꽃가루받이를 하는 전략과 유사하다. ‘가짜 꽃으로 승부를 보는 식물이 있는 데 수국과 불두화’가 대표적이다. 수국은 산수국의 가짜 꽃을, 불두화는 백당나무 가짜 꽃을 육종한 것이다. 그러나 꽃의 진짜와 가짜 구분은 의미가 없으며 열매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히려 꽃은 ‘당신들 중 누가 진짜인가’라고 묻는다.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는 전나무를 빗댄 도광양회(韜光養晦)도 흥미롭다. 숲의 그늘에서 햇빛을 받으며 말없이 힘을 키우는 전나무는 인내를 상징한다. 음지에서 견디는 내음력이 강한 나무다. 1992년 덩샤오핑의 외교노선은 도광양회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미국과 대등하게 될 때까지 몸을 낮추며 국력을 배양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도 내일을 위해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로 인한 실업과 경제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견디며 고독하고 치열한 시간을 견딘다. 저자는 “어서 이들 주변에 밝은 빛이 비쳐 전력 질주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언젠가 그동안 감춰두었던 더 큰 빛으로 세상을 밝히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말한다. <궁리·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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