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문화전당, 환경 주제 ‘이퀼리브리엄’전
김준·라일라 친후이판 등 아시아 작가 11명
생태계 현재 미래·인간에 대한 경고 전달
수십 개의 용의 조형물은 그 자체로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용의 형상을 본 것은 처음이다. 가느다란 구조물을 배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신비롭다. 용이 이렇게 친근한 작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용이 머무는 장소를 ‘용소’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상징적인 공간인 용소를 신성시했다. 전통 한옥을 지을 때 화재를 막기 위해 용의 머리인 ‘용두’를 내걸었다. 또한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용이 사는 연못에 용의 천적인 호랑이 머리를 빠뜨려 용이 놀라 하늘로 올라가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에서 만난 백정기 작가의 ‘용소’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수십 개의 용들이 저마다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오래도록 발걸음을 붙잡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직무대리 박태영)과 아시아문화원(ACI·원장 이기표)은 아시아 작가들이 경험한 과거 환경을 매개로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이퀼리브리엄’을 열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내년 3월 14일까지 복합 3, 4관에서 개최되는 ‘이퀼리브리엄’은 생태계에서 종의 종류와 수량이 항상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참여작가는 한국의 김준 작가를 비롯해 배정기, 대만의 라일라 친후이판과 케친위안, 베트남의 응우옌 우담 트랑, 인도네시아의 물야나 등 아시아 작가 11명이다.
전시는 모두 4개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리로 모습을 담아내는 사운드 스케이프 작품들로 구성된 섹션 1은 ‘개인의 과거 기억 속 환경’에 주목한다. 눈에 띄는 작품은 ‘허백련 & 무등산 사운드스케이프’. 허백련의 ‘日出而作’(1954)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해 뜨면 밖에 나가 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풍년이 들어 배불리 먹고 걱정 없이 지낸다는 중국 당요의 노래인 ‘격앙가’의 한 구절이기도 하다.
그림을 보는 동안 오디오를 통해 무등산과 연관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박진홍의 ‘사우드&싱글 채널비디오’는 풍경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소리를 느낄수 있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있고, 냇물이 흐르는 소리도 있다. 작가는 풍경 속 소리와 현재의 환경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섹션 2와 섹션 3의 작품은 환경과 관련해 축적된 개인의 기억에 초점을 맞췄다. 특정인의 기억이 어떻게 사회의 역사와 연결되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백정기의 ‘용소’, 유지수의 ‘온산’, 케친위안의 ‘전진’, 응우옌 우담 트랑의 ‘뱀의 꼬리’ 등을 만날 수 있다.
유지수 작가의 ‘온산’은 울산에 있는 온산 지역이 개발로 훼손되고 주민들도 터전을 잃게 된 내력을 주목한다. ‘온산’은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작가는 다큐멘터리를 매개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베트남 응우옌 우담 트랑의 ‘뱀의 꼬리’는 호치민시의 오토바이 행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작가는 매일 마주치는 매연이 공기로 된 뱀과 같다고 전제한다. 뱀처럼 길게 늘어선 오토바이, 배기통에서 흘러나오는 매연이 마치 꿈틀거리는 뱀과 같다는 의미로 치환된다.
원래 ‘뱀의 꼬리’는 총 3 개의 영상(라이트 박스, 방 안의 코기리, 무지개 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3개의 영상을 포함해 ‘방 안의 코끼리’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베트남에는 코끼리가 많지만 서식지 파괴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실정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코리끼의 모습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들의 무지와 무모함에 대한 경고로 다가온다.
섹션 4는 섹션 1,2,3을 지나온 관람객들이 환경 치유와 미래 비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을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증강현실(AR), 실내 군집드론 비행 퍼포먼스 ‘회귀된 시간’이 눈길을 끈다.
장준영과 전지윤이 장전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했으며, 작품은 변화되는 장소에 주목하면서 시간차에 따른 영상을 기록한다. 다른 장소로 이주한 군집드론이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균형을 이루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들은 여러 모습들을 조합해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을 새로운 의미로 풀어내며 공존과 연대의 의미를 부여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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