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카페에서 읽는 조선사 - 표학렬 지음
“왕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의 처지는 이토록 비참했다. 비단 세조뿐만 아니라 중종반정으로 왕에 오른 중종은 공신 박원정을 서서 맞이했고 갈 때는 따라가 배웅했다고 한다. 인조반정으로 왕에 오른 인조도 그를 왕위에 올려준 서인에게 항상 굴복해서 결국 병자호란 때 삼배구고두례(三拜口叩頭禮)의 치욕을 겪었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차남 왕도 마찬가지였다.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쫓겨났고, 효종은 스승 송시열의 등쌀을 견디지 못해 기해독대라는 초유의 정치적 장면까지 연출했다. 방계인 선조와 철종은 신하들의 대립 속에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했다. 우수한 학자 신하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왕 노릇하기 어려웠던 것이 조선의 정치였던 것이다.”
‘카페에서 읽는 조선사’는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다. ‘카페’와 ‘조선사’라는 두 어휘가 주는 이질감 때문이다. 커피와 차를 마시는 편안한 공간과 당쟁 500년의 역사로 치환되는 조선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살롱문화가 번성했을 때, 클래식을 들으며 문화를 향유하던 서양인들이 있었다. 비록 시공간은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상이하지만, 오늘의 우리도 카페에서 조선의 역사를 다면적으로 볼 수 있다.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의 표학렬 작가가 펴낸 ‘카페에서 읽는 조선사’는 아홉 가지 키워드로 보는 조선의 낯선 모습을 담고 있다. 왕, 영웅, 정치인, 출세, 직업, 재테크, 전쟁, 역병, 음식 등을 모티브로 조선의 모습을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흔히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오늘의 문제와 모순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입맛대로 과거를 곡해할 우려가 있다.
제시된 키워드들은 따로 분립돼 있지 않고 상호 연결돼 있다. 순서와 무관하게 읽어도 충분한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먼저 ‘왕’, ‘영웅’, ‘정치인’에서는 기존의 선입관을 배제하고 인물의 의의와 한계를 짚는다. 성군은 만들어진다는 명제를 세종의 예를 보여준다. 공부를 잘했으며 유교 권위자로서 신하를 다스렸다. 반면 준비되지 못한 왕 세조는 비극을 초래한다. 쿠데타를 기획해 왕위에 오른 세조는 공신들의 등쌀에 시달렸는데, 전국을 돌아다닌 이유는 공신들을 제어할 수 없어서였다.
직업을 키워드로 해서는 노비와 역관이 보여주는 삶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조선 시대 노비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존재”라고 규정한다. 노비는 매매되는 특징 때문에 노예와 유사하지만 가족을 이루고 재산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저자는 “노비의 사회학적 연구는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비정상적이고 억압적인 고용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중인은 조선의 전문직이었다. 지금의 의사, 법조인, 외교관, 무역상, 과학자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조선에서는 차별의 설움을 받았다. 오늘의 통역관을 말하는 역관은 “외교, 무역, 스파이 역할까지” 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홍순언은 환갑이 넘어서도 조선과 중국을 넘나들며 국난 극복을 위해 맹활략했다.
조선시대 밥상이 들려주는 신분의 이야기는 ‘먹는 것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명제에 부합한다. 왕은 12첩 반상이었으며 일반인은 9첩, 7첩, 5첩, 3첩 밥상을 받았다. 특히 왕의 밥상은 화려함과 사치의 극치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양반 또한 호화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양반들의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장계향이 남긴 ‘음식디미방’에는 146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이 소개돼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운요호 사건을 통해 본 전쟁의 모습과 질병이 왜 재앙이 되었는지를 조명하는 역병 부분도 흥미롭다. 한마디로 ‘조선의 다양한 얼굴’이 펼쳐진다. 저자는 “조선을 하나로 정리하기보다 500년의 역사 속에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사건과 삶이 있었는지 소개하려 한다”고 의미를 말한다. <인물과사상사·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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