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문화공원 김냇과에서 31일까지
‘관조’에서 ‘치유’로…다채로운 색감으로 완성
영무예다음1년간 후원…작가 지원 많아졌으면
‘구름 작가’ 강운의 신작전이 열리는 전시장 입구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사라짐 그 여운의 회화. 치유하려 쓰고 지우며, 명료한 색채로 삶의 질감을 덧댄다.”
‘마음 산책’을 주제로 광주시 동구 문화공원 김냇과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의 키워드는 작가가 직접 쓴 저 글귀에 모두 포함돼 있다. 변화무쌍한 구름, 촉각을 건드리는 공기의 흔적 등 지금까지 ‘관조적인 시선’의 작품이 주였다면 이번 신작은 ‘치유의 시선’을 담고 있다. 캔버스 안에서는 그가 나무 젓가락을 깎아 써내려간 수많은 ‘글’들이 ‘쓰이고 지워지는 과정’이 거듭됐다. 여러 색을 덧칠하고 문지르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오묘하고 명징한 ‘색감’이 화면을 장악하며 ‘삶’이라는 큰 주제를 완성해 낸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색감은 ‘색채도감’을 보고 있는 듯 흥미롭고, 저절로 치유가 된다.
이번 개인전은 강 작가에겐 특별하다.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강 작가는 ‘1년을 10년 처럼’ 쓰며 작업에 몰두했다.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마음을 쓰며 대형 신작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2년간 부산 샌텀시티등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며 성과도 있었지만 생활에 필요한 작업이 아닌, 온전히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작업만을 하기에는 여건이 녹록치 않았다.
그는 무작정 전국 기업 CEO들에게 메디치가의 이야기를 서두로 한 이메일을 보냈다.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견 작가가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완성해 낼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거절이 있었고, 답장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러던 중 영무예다음 박헌택 대표에게서 답이 왔고 지난 9월부터 올 8월까지 매달 1000만원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MOU를 체결했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은 아니어서 더욱 감사했죠. 한번인가 작업실에 오셔서도 별 말 없이 뜨거운 열기만 느끼고 간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깊이 있는 창작이 나올 수 있을까 부담도 많이 됐어요. 무엇보다 강한 책임감이 느껴졌죠. 제가 잘 해야 또 다른 동료 작가, 후배 들도 메세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지하1층과 2층 전시실과 1층 커피숍에서 만나는 50여점의 추상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작은 자기 성찰과 고백이 강한 작품들로 ‘마음’을 들여다 본다. 작업의 출발은 딸과의 대화였다. 아내이자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겪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그 내용을 타이핑을 해보며 마음이 편한해짐을 느낀 그는 이 글들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 신작을 구상한다. 글의 내용은 다채롭다. 딸 아이와의 대화도 있고, 사랑과 이별,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의 대담, 5·18의 기억 등 개인서사와 공동체 서사가 어우러졌고, 동구 지역의 지도를 바탕에 그리기도 했다.
“인간 마음의 스펙트럼을 그려보고 싶었고, 나를 알고 싶었습니다. 내 자신부터 위로하고 싶었죠. 고통과 고민들을 마주하며 질문을 했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이 줄어들것 같아 계속 썼고 나를 치료하고 싶어 지우고 명료해질 때까지 힐링의 색채를 입혔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들이 튀어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듯합니다. ”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시각언어’로 표현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다 ‘시스루(See Through)’ 의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여러겹이 겹쳐지면서 예상치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시스루의 특성이 흥미로웠어요. 제가 시스루 기법이라고 표현했는데 글씨를 쓰고 지우고, 문지르는 과정, 또 다채로운 색을 수차례 바르는 반복을 통해 여러 ‘겹’이 생기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캔버스에서 만나는 내용은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죠. 관람객들이 자신의 마음의 여백을 들여다보고,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며 치유하는 여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품은 무엇보다 독특한 ‘색감’이 눈에 띈다. 수백번의 긁어냄과 덧칠을 통해 때론 우연이 가져다 준 의도하지 않은 컬러를 얻어내는 성과도 있었고 강렬한 녹색 작품 등 전시작에서는 그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는 물감이 마르기 전, 새로운 색을 화폭에 얹었을 때, 그 위에서 스스로 섞이며 만들어내는 ‘마음의 색’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했다.
“지금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삶의 태도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가가 자신만의 컨셉을 가지고 작업하는 건 당연합니다. 내 컨셉을 정확히 작업화하는 게 중요하죠. 메디치가가 없었다면 문예부흥이 있었을까요,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가 있었을까요. 예술가를 지원하는 메세나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강 작가는 작품에서 힐링과 치유를 얻는다며 거의 매일 전시장을 찾아와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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