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식탁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양영란 옮김
페르시아 시인이자 철학자인 오마르 하이얌(1048~1131)은 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와인은 우리에게 우리의 젊음을 돌려주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돌려주며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준다. 와인은 불의 격랑처럼 우리를 불태우나 그와 동시에 우리의 슬픔을 시원한 한줄기 물로 바꿔주기도 한다.”
오마르 하이얌에게 와인은 매우 중요한 음식이었다. 사람들은 음식에 관한 저마다의 관점이 있다. 물론 철학자나 수학자, 공학자, 예술가 등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둘러싼 철학자들의 생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제목부터 이색적인 ‘철학자의 식탁’은 ‘먹고 요리하고 이야기하는 일의 즐거움’을 다룬다. 노르망 바야르종 몬트리올 퀘벡 대학교 교수는 맛을 철학이라는 테이블에 펼쳐놓고 독자들을 초대한다.
과연 철학자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눌까. 다른 무엇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했던 공리주의는 채식주의와 어떻게 만날까. 나아가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지금까지 ‘식’(食)과 ‘맛’은 감각적이라는 이유로 그다지 철학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자들도 일반인처럼 음식을 먹고 맛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연 철학자들은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은 독자들을 매우 특별한 애찬(愛餐, 다른 말로는 아가페·식사)이자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칠맛까지 겸비한 연회로 초대한다. 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자들과 더불어 섭생과 관련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식탁에 관한 칸트의 철학적 단상’은 이렇다. 칸트는 되도록 식사는 혼자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봤다. 주빈을 빼놓고 식탁에 앉은 수는 3명보다 적어서는 안 되며 9명보다 많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4명에서 10명 정도가 이상적이다. 특정인이 자신만의 얘기를 독점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식탁의 대화는 놀이의 차원이지 전투가 아니라는 얘기다.
장 자크 루소가 활동할 당시의 철학자 앙텔름 브리아-사바랭은 먹는 즐거움을 설파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요리예술’의 예술성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그는 먹는 행위와 식탁에 앉는 행위를 구분한다. 식사 시간은 기다리고, 먹고, 음미하는 등의 모든 시간이다.
플라톤은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매주 중요시 여겼다. 그의 저서 중에는 요리와 관련된 은유가 자주 등장하며 섭생이나 음식 준비 부분도 할애돼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요리 자체에 대해서는 “생명체에게 자양분이 되는 배움에 토대를 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비판적 입장이다.(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경직된 접근이 아닌가 싶다)
철학자의 식성에 관한 부분도 등장한다. 사르트르는 해산물을 매우 싫어했다. 그렇다고 채소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사람이 직접 요리하지 않은 음식에 크게 호감을 갖지 않았다.
이밖에 책에는 채식, 금식, 식탐과 같은 주제도 담겨 있다. 음식과 식사를 다양한 철학적 관점과 연계해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먹는 즐거움은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이자 문화적 행위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모든 나이와 사회적 조건을 초월하고 시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 즐거움은 다른 모든 즐거움과 결합할 수 있으며 그 모든 즐거움이 사라질 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우리를 위로해준다.” <갈라파고스·1만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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