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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기자

“북녘 가족 얼굴 맞대고 한가위 쇠는 게 평생 소원”

by 광주일보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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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비대면 추석’ 보낸 광주지역 실향민들의 바람
“대동강서 놀던 기억 생생…고향땅 밟아봤으면”

 

명상엽 할아버지가 집앞에 있는 국가 유공자명패와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얼굴 맞대고 추석 명절 한번 지내보는 게 평생 소원이예요.”

흩어졌던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수확에 감사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민족대명절인 추석, 이름만 들어도 넉넉해지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것이 추석 귀향길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다르다. 코로나19 감염확산 위험으로 민족대이동 대신 온라인·비대면 추석으로 변모했다. 올초부터 코로나 때문에 보지 못한 부모님을 추석에까지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70년 가까이 가족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생사 확인도 하지 못한 채 강제로(?) 비대면 추석을 지내온 사람들이 있다. 실향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나마 광주지역 실향민들은 광주시 북구 ‘망향의 동산’에서 매년 합동 망향제를 지내며, 비슷한 아픔을 지닌 동향 사람들끼리 모여 그리움을 달래왔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힘든 실정이다.

고령의 실향민들이 코로나19 감염위험 때문에 고심 끝에 망향제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비대면으로 70년간 버텨온 실향민들은 올해 추석에는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홀로 견뎌내야 한다.

또 실향민들은 최근 연평도에서 발생한 서해어업단 실종사건과 관련해 혹시라도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북에 있는 어머니 산소 성묘 드리고 눈 감고 싶어”
<인민군 입대 싫어 월남한 명상엽 할아버지>

“어린시절 고향땅 대동강을 건너 다니며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죽기전에 고향땅을 한번 밟아봤으면 소원이 없겠어”

명상엽(90·광주시 서구 양동) 할아버지는 “이제는 정말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며 “죽기 전에 북한에 있는 동생들(4명)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 용연면 맹종리 424번지라는 고향집 주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고향에서 7남매 중 네째로 태어나 평안남도 여포국민학교와 여포중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진학하기 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군에 입대해야 할 나이였던 그는 인민군에는 입대하기가 싫어 첫째형과 대한민국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1950년 12월 5일 할아버지는 전쟁당시 행방불명 된 둘째 형(명인엽·93)을 빼고, 첫째 형(명정엽·96)과 친구들 8명이 함께 걸어서 김포까지 내려왔다.

12월 27일 김포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첫째형과 한국군에 자원입대했고 첫째형은 5사단으로 명할아버지는 8사단으로 배치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첫째형과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첫째형은 한국전쟁 행불자로 현재까지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명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오면서 70년 동안 동생 생사조차 모르고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죽기전에 고향땅에 묻혔을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하고, 이북에 남겨둔 동생들 명복엽(여·87)·승엽(84)·태엽(81)·춘엽(여·78)이를 한번만이라도 보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명 할아버지는 언젠 가는 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위암으로 위를 전부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건강을 유지하면서 동생들을 만날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연평도에서 최근 발생한 서해어업단 공무원 실종 사건에 대해 명할아버지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눴다는 사실에 또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빨리 원만히 해결돼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향민 박영숙 할머니가 지난 2007년 금강산을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을 보고있다.


“북에 있는 어머니 산소 성묘 드리고 눈 감고 싶어”
<1·4후퇴 때 내려온 박영숙 할머니>

“북에 있는 남동생을 만나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서 성묘를 드리고 눈을 감았으면 좋겠어요.”

28일 만난 박영숙(84·광주시 남구 봉선동) 할머니는 2007년 금강산 관광 때 찍은 사진을 놓지 못했다. 사진은 40여 명의 실향민들이 금강산 입구에서 찍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을 포함해 사진 속 실향민 절반 이상이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면서 “한번만이라도 고향땅을 밟아 봤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또 박 할머니는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69년 전 고향에서 헤어진 어머니와 남동생이 생각난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결혼 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이북의 남겨진 어머니의 제사상을 차렸다고 한다. 한번만이라도 산소 앞에서 직접 성묘를 드리고 싶다는 게 박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북청물장수’로 잘 알려진 함경남도 북청군 양하면이다. 박 할머니 집안은 과수원과 선박까지 운영하는 등 부유했다.

1951년 1·4 후퇴 당시 15살이던 박 할머니는 중공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아버지와 오빠의 손을 잡고 피난 길에 올랐다.

박 할머니는 집을 지키기 위해 고향에 남은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일주일만 있다 다시 올라올게요”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이것이 박 할머니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놓은 이후 북청에서 100명 남짓이 겨우 탈수 있는 목선(돛단배)을 타고 피난길에 올라 한 달만에 포항 구룡포에 도착했다.

박 할머니는 매년 추석 제사상을 차리면서 이북에 있는 가족들 몫까지 꼭 챙기고 있지만, 남동생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거르지 않고 있다.

박 할머니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10년 전에 정부를 통해 들었다”면서 “아직까지 동생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이산가족상봉을 신청해 대기중인 광주·전남 이산가족 수는 모두 1215명(광주 488명·전남 727명)이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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