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오페라단 아시아문화전당서 공연
‘로시니’ 음악성·벨칸토 창법 정수 보여줘
‘운명 개척’ 중요성 역설…원작과 차이 극명
티키타카 중창 폭소…극고음엔 감탄 연발
숯검정을 뒤집어 쓴 아가씨 체네렌톨라가 노래한다. 우리에겐 ‘신데렐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로시니 버전의 아리아다.
동심을 자극하는 시놉시스 때문인지 이날 공연장에는 어린이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열두 시의 마법과 금빛 호박마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빛은 순수하게 빛났다.
그런데 상연에 앞서 작품을 연출한 이경재 해설가는 “오늘 공연은 로시니가 17세기에 ‘이탈리아 오페라’로 각색한 버전이기에, 원작에 등장하는 판타지적 내용을 고스란히 볼 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화려한 드레스와 유리구두, 마차 없이 신데렐라가 현실의 질곡에서 탈출하기란 쉽지 않을 터, 과연 로시니의 베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Verismo Opera) 속에서 동화적 환상은 어떻게 재현됐을까.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인 ‘가족오페라 신데렐라’는 로시니의 음악적 천재성과 미려한 벨칸토 오페라 창법의 정수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초고음역대를 소화하는 콜로라투라(coloratura) 기법부터 시종 단디니(바리톤·조재경 분)와 양언니 클로린다(소프라노·김나연), 티스베(소프라노·서미선) 등을 중심으로 재해석된 해학성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세계적 고전 ‘신데렐라’는 친근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쉽게 실연하기 어려울 만큼 고도의 테크닉, 난이도를 자랑한다. 심지어 로시니의 원작에서도 ‘로시니 가수’라 일컬어지는 일부 오페라 싱어들만 소화 가능할 정도, 극고음(하이 C) 옥타브의 전율은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작품 초입에서 하녀처럼 일하는 신데렐라(메조소프라노·지나 오)의 정형이 등장한다는 점은 원작과 유사했다.
그러나 거지로 변장해서 구걸하러 온 알리도르(베이스·김일동)로 인해 그녀가 무도회에 참가한다는 점, 계모 대신 등장하는 의붓아버지 돈 마니피코(바리톤·김지욱)의 존재 등은 서양고전과 차이가 있었다.
특히 ‘여성의 주체성’에 집중해 극을 풀어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신데렐라는 알리도르에게 자신의 의지로 선행을 베풀었는데, 이에 대한 결과로 왕자를 만나게 됐다는 점은 ‘주체적 운명 개척’과 ‘자기결정’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2막 초입에서는 왕자에게 ‘유리구두’를 흘렸던 대목도 개작됐다. 우연히 구두를 잃어버리는 우연성에 기댔던 원작과 달리, 로시니 버전은 신데렐라가 팔찌 한 쪽을 징표처럼 남기고 떠나는 내용이었다.
작품 속에서 강조된 여성의 결정권 강조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로시니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이사벨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등에서 모두 스스로 운명을 써내려가는 대담한 여성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한편 이번 작품은 코믹한 내용을 첨가한 희가극인 만큼, ‘파를란도(Parlando·빠른 대사)’와 같은 희극 요소를 통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대사를 랩처럼 뱉는 파를란도는 ‘로시니 크레셴도’라 불릴 정도로 로시니가 애용했던 기법이다. 안젤리나의 두 자매와 돈 마니피코는 중창 ‘중대한 비밀이 있는데’에서 빠른 ‘티카타카’로 관객들을 폭소로 이끌었다.
오케스트라 카메라타전남과 배역들 간 소리의 합(合)도 좋았다. 울려 퍼지는 ‘피날레 프리모’ 등은 어디부터가 현의 진동인지, 어디까지가 인간의 성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게 공명했다.
스타카토, 트릴, 레가토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안젤리나의 난곡 ‘이젠 슬프지 않아요’도 기억에 각인됐다. 메조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음성은 풍부한 양감(量感)으로 공연장을 채웠으며, 삽화 형식의 라이브 애니메이션도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만 극 초입~중반부에서 어린이 관객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고민은 더 필요해 보였다. 95분 러닝타임의 4세 이상 관람가 작품이었기에 ‘마법’, ‘무도연’ 등을 기대했던 일부 아이들의 집중은 쉽게 흐려졌다. 초~중반부에도 오페라 부파(희극)적 요소를 배치하는 등 방법이 떠올랐다.
물론 이는 ‘어린이 관객’을 동원하는 가족오페라의 태생적 리스크다. 그럼에도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최철 예술감독 선임 이후 과감하게 로시니 버전을 첫 공연으로 선보이고, 주말 관객몰이에 성공한 점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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