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유적지 85곳 중 장흥·무안·화순 제외 방치상태
“예산없다” 손놓은 재단·지자체…관리는 향토회·유족 몫
올해로 동학농민혁명(1894년)이 130주년을 맞이했지만 광주·전남지역 동학 유적지가 방치되고 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2019년에는 관군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황토현전투(5월 11일)를 기념해 국가제정기념일로 제정됐지만 유적지에는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9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재단)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총 85곳(광주 3, 강진 3, 고흥 2, 곡성 2, 광양 4, 구례 3, 나주 7, 담양 4, 목포 1, 무안 8, 보성 2, 순천3, 여수 7, 영광 3, 영암 1, 장성 2, 장흥 17, 진도 4, 함평 4, 해남 2, 화순 3곳)이다.
이중 국가사적지로 등록된 곳은 장성 황룡강 전적지와 장흥 석대들 전적지 2곳 뿐이다. 나머지는 재단이 2010년과 2019년 현지조사와 사료 분석을 통해 자체 지정한 유적지다.
지난 7일 광주일보 취재진이 찾은 나주시 대호동 함박산 전투지에서는 동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주성 북문인 이곳은 농민군이 나주성을 기습하려고 주둔했던 곳이다.
광주지역 동학군 나주 동학군이 합세해 나주성을 공격해 나주성 바로 옆에 있는 함박산까지 진격했으나, 끝내 나주성 함락에 성공하지 못하고 남산촌으로 후퇴했다.
오히려 수성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고 광주까지 밀려났다. 당시 나주의 유생 이병수는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고 흐르는 피가 냇물을 이루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장소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 등이 없어 동학 전투지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고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접근도 어려웠다.
나주목사 내아도 마찬가지. 이 곳은 수성군의 저항에 나주 점령에 실패한 전봉준이 무장하지 않은 채 나주목사 민종렬을 만나 집강소 설치 협조와 수성군 해산 등을 논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숙박업소로 운영 중인 내아에는 팽나무와 의로운 나주목사에 대한 안내판이 있지만 전봉준과 민 목사의 회담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설치해 행정 사무를 봤던 집강소 터 중 하나인 함평군청에서도 동학의 자취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찾을 수 없었다.
함평 학교면 고막교(석교) 전투지에는 무안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세운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함평군은 “동학 유적지는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동학은 발생 100년이 지난 후에야 민주주의의 시초로 인정받으며 뒤늦게 역사 재조명 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전남지역 동학 유적지는 재단이나 지자체가 아닌 향토회, 유족 주도로만 관리되고 있다.
유적지가 없는 신안과 완도군을 제외한 20개 전남 시·군 중에서 농민군이 활발했던 장흥, 무안, 화순군만이 기념탑, 표지석 등을 통해 기리고 있을 뿐이다.
재단은 “예산이 없어 지자체가 관리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재단은 설립 근거에 따라 동학 관련 자료의 관리, 보존 또는 유적지 정비 사업 등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에 10억여원의 관리 예산을 매년 신청하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자체는 지역 동학 유적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관리주체가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나천수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은 “동학 역사에서 전남은 대규모 전투가 발생한 곳이자 다수 농민군의 처형이 이뤄진 곳이며 최후 항전지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면서 “현재 남아있는 유적지라도 제대로 관리해서 동학 정신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학 유적지는 오늘날 동학 정신을 오래도록 기리고 가슴에 새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유적지 안내 표시판 등을 세우고 더 나아가 유적지를 관광지로 만들어 나가야 더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주·함평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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