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성천기자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 -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김수경 옮김

by 광주일보 2024. 4. 27.
728x90
반응형

맥주는 어떻게 종교사·문화사·전쟁사를 바꿔놨을까

“나의 맥주잔은 엉터리라네. 내가 만들었다네. 많은 사람이 감쪽같이 속았다네. 나는 물 탄 에일을 사람들에게 속여 팔았다네.”

위 글은 맥주에 물을 타서 양을 속여다가 화형을 당한 어느 ‘에일 와이프’가 심판대에 오르기 전 읊조린 말이다. 에일 와이프는 영국의 14세기 후반 무렵 맛있고 품질 좋은 맥주를 생산했던 에일 하우스의 여주인을 말한다. 에일은 일종의 맥주였는데 영국 민중들에게는 기호품이 아닌 생필품이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고유의 맥주 제주법이 있었다. 딸이 결혼할 때 맥주제조법, 담금용 솥을 지참하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영국 여인들은 대체로 자신들만의 세련된 맥주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에일 하우스에는 에일을 마시기 위해 찾아드는 남자 손님들로 들끓었다. 에일 와이프는 남자들의 우상이었고, 에일 와이프와 관련된 일화나 추문이 많았던 모양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는 정체모를 액체를 탄 맥주가 판매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마르틴 루터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신학자 요한 에크 앞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맥주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서 전해온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좀더 파고 들어가면 맥주는 단순한 술을 넘어 인류사의 중요한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기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맥주 제조를 가르쳤던 무라카미 미쓰루의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는 흥미운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지구 맥주 기행’ 등을 펴내고 맥주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맥주 전문가다.

책에는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과 시원한 거품의 맥혹적인 맥주’가 어떻게 종교사, 문화사, 전쟁사 등을 바꿔놨는지 기술하고 있다. 동서양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이야기는 마치 분위기 좋은 맥주집에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환기한다.

다루고 있는 내용들도 이색적이다.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 에피소드들이다. 일테면 이런 내용이다.

‘신도 포기한 땅’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어떻게 문명의 발상지이자 맥주의 발상지가 되었을까?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왜 맥주를 ‘수준 낮은 술’로 깎았을까? 고대 수메르인들은 왜 맥주로 세금을 납부했으며 도시와 국가는 노동의 대가로 맥주를 지급했을까 등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익히 알려진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이끈 선구자다. 그는 누구보다 바르고 정직한 인물이었을 게다. 그런 그가 종교개혁을 이끌어낸 뒤에는 ‘맥주의 힘’이 있었다는 것은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환멸을 느꼈다. 부패 집단이었던 당대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죄를 면죄해주는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처사였다.

루터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를 비롯해 각지의 제후들 앞에서 ‘95개 논제’를 제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단에 오르기 전 루터의 비서는 아인베크 맥주가 든 1리터들이 맥주잔을 조심스레 건넸다. 루터는 술기운을 빌렸지만 담대하게 일장 연설을 펼쳤다. 결국 감동적이고 격정적인 연설은 종교사와 세계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히틀러로 대변되는 나치스의 출발점이 맥줏집 호프브로이하우스라는 점도 이채롭다. 맥주의 도시로 명성을 얻고 있던 독일 남부 뮌헨의 유명한 호프집이었다. 이곳에서 히틀러는 정치집회를 열고 폭동을 주동했다. 이후 히틀러는 또 다른 비어홀 뷔르거브로이켈러 등 일명 ‘맥줏집’에서 정치 폭동을 이끌었다.


이밖에 맥주잔이 도기에서 유리로 교체되면서 ‘맥주 색’이 중요하게 된 것을 비롯해 유럽 맥주 왕국으로 벨기에가 손꼽히는 이유 등 다채로운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사람과 나무사이·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박시백의 고려사(전5권)- 박시백 지음

1996년 한겨레신문의 날카로운 시사풍자 ‘만평’으로 데뷔한 박시백은 그동안 범인들의 소소한 삶을 만화로 그려내 호평을 받아 왔다. 그가 역사로 눈을 돌리면서 출간한 ‘조선왕조실록’(2000

kwangju.co.kr

 

 

지역영화 이슈 톺아보는 영화비평 계간지 ‘씬1980’ 17호

‘광주·전남의 대안 영화공간들’, ‘버텨내고 존재하는 지역영화’, ‘광주의 영화공부모임’, ‘전주독립영화에 대한 목소리’……. 광주전남의 지역영화 이슈를 톺아보고 지역영화의 미래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