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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류빈기자

[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사바하

by 광주일보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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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화 '파묘' 인기몰이에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전작 관심
‘진리 발견한 악’과 ‘번뇌 빠진 선’…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경종

&lsquo;그것&rsquo;은 불가의 세 가지 손동작(수인)을 보여주며 깨달은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바하 캡처>

“나는 너희들이 피 흘릴 때 같이 울고 있는 자다”

음습한 ‘그것’이 나지막히 읊조린다. 내가 도탄에 빠져 있을 때, 나와 함께 피눈물 흘려주는 자야말로 종파를 초월한 신(神) 아닐까. 불경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교의 손동작인 수인을 시연하자 일순 부처의 금빛 휘광마저 엿보인다.

이윽고 ‘그것’은 손가락으로 불도의 바퀴를 굴리는 전법륜인(轉法輪印), 빈 손바닥을 드러내 근심을 파하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차례로 선보인다. 성스러운 열반의 경지 바로 앞에 당도한 것만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본 ‘그것’에게서는 일말의 신성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는 순간을 상징화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행할 때에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것’이 설파하는 진언들은 달콤해서 듣고 있으면 불도를 다 깨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 ‘사바하’를 감상한 뒤, 최근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1000만을 목전에 둔 ‘파묘’가 갑자기 만들어진 작품이 아님을 확신했다.

오컬트 전작 ‘사바하’는 ‘파묘’의 영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단단한 반석이 된 작품이다. 현재 넷플릭스, 티빙 등 각종 OTT 플랫폼에서 파묘 흥행과 맞물려 실시간 인기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다.

불가의 조각과 탱화 등을 사면에 수놓고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씬이 자주 활용됐다.

영화는 신흥 종교비리를 발굴하는 종교문제연구소 ‘박웅재(이정재 분)’ 목사가 ‘사슴 동산’이라는 종교 단체를 파헤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이 사체로 발견된 뒤 이를 쫓던 경찰 등을 사슴 동산에서 다시 마주치고, 의심은 꼬리를 물며 점점 더 많은 미스터리 속에 빠져든다. 전형적인 오컬트다.

얼핏 보면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시놉시스처럼 읽히지만, ‘사바하’는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이분법적 사유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주가 된다.

털에 뒤덮인 채로 쌍둥이의 다리를 뜯어 먹어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조차 박탈당한 ‘그것’(이재인 분)은 일견 악에 가까워 보인다. 불로 영생하며 악한 자들 앞 ‘등불’을 자임하는 미륵불 김제석은 작중 선의 얼굴을 지녔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가 서로 접맥해 있다는 불교의 연기설처럼, 영화는 선악의 분별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존경받는 ‘김제석’의 존재로 인해 ‘그것’이 태어날 수 있었고, 역으로 ‘그것’이 김제석의 삶을 지탱한다는 것. 이는 자신의 꼬리를 먹고 먹히며 무한히 똬리를 튼 뱀 ‘우로보로스’의 사유와도 일견 맞물려 있다.

박 목사(이정재)는 &lsquo;사슴 동산&rsquo; 교단의 비밀을 파헤치던 도중, 더 큰 미스테리를 마주한다.

선과 악의 우로보로스적 관계로 인해 영화에는 영원한 악도 정의도 없다. 모든 선악이 카르마(업)로 이어져 연쇄되기에, 어둠 속에서 실견한 ‘그것’은 음험한 뱀을 두른 악한 모습에도 정갈한 진리를 논하고, 인간의 약한 마음을 선하게 위무한다.

영화 속 상징물인 염소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악마의 상징으로 많이 인용되나, 불교 등에서는 경우에 따리 염소를 ‘선’으로 묘사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성은 선해질 수 있고 불선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이나, 고자가 성무선악설을 위시하며 “인간의 본성이 선과 불선(不善)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치 물이 동서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과 같다”고 했던 명제들도 같은 의미맥락에서 연상할 수 있었다.

한편 장재현 감독만의 ‘영화적 고집’은 이 같은 철학에 설득력을 더한다. 작중 김제석은 내충텐파 스님에게 “천적이 태어난다”라는 예언을 듣고 1999년 태어난 여자 아이들을 모조리 죽인다. 이 같은 내용은 마태복음 2장 16절 ‘헤롯왕 이야기’에서 유다의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육이 이어졌던 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부처 탱화나 대사 하나까지도 종교적 자문을 구한 뒤 촬영했다고 하는데 이런 심미적 집념과 탐구의식은 ‘파묘’에서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가를 다룬 장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었다. 두 작품이 서로 접맥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나한(박정민)이라는 이름은 깨달은 자를 뜻하는 불교 용어 &lsquo;아라한&rsquo;에서 가져온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은 “‘깨달음을 얻은 악’과 ‘번뇌에 빠진 선’ 중에서 어떤 것이 진리인가”인 것 같다. 수많은 ‘아멘’과 ‘사바하’(Savaha·불교에서 성취를 바라는 말)를 외쳐도 신에게 닿지 않는 구원이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말미에서는 “저희의 울음과 탄식을 들어주소서”라는 박목사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신앙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최초로 인정한 네메시오스나 선악 이원론, 절대선악을 부정한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이름도 스쳐간다. 그러나 이들의 복잡다단한 사유를 ‘사바하’는 그저 영화적 여흥으로 가볍게 소화해 냈다.

‘사바하’는 현재 티빙, 시리즈온,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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