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이 장갑차에 불 지르자 방어 차원…” 자위권 발포 인정
“헬기 사격 사실 단정할 수 없다”…과거 조사보다 후퇴한 결론
5·18 진상규명조사위 보고서 겉핥기 조사에 곳곳 부실 투성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조사결과 보고서에 부실한 조사 내용이 다수 수록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엄군 등 5·18 관련자 진술 채록에 치중한 탓에 객관적 증거 확보가 미흡했고 양비론적 시각으로 군·경의 왜곡·편향된 자료를 여과 없이 인용했다는 것이다. 무고한 광주시민을 향한 발포를 ‘자위권 확보 차원’이라는 등 군·경의 주장을 답습하는 등 설득력 없는 조사 결과도 포함돼 있다. 이런 사례는 진상조사위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한 사건에서 두드러졌다.
◇계엄군 주장 받아쓰기=조사결과 보고서에는 군·경의 기록물이 왜곡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진상조사위의 가장 큰 목적은 국민통합이므로 국민갈등 유발 요인을 차단한다’는 주장을 수용해 군·경의 주장과 관련 기록물을 싣고 이를 바탕으로 조사를 진행해 군경의 왜곡된 주장이 그대로 실린 사례가 빈번했다.
특히 발포책임과 관련 윗선에 대한 조사는 전무하고 자위권과 비상경계 태세 발동 여부만을 바탕으로 현장 지휘관 및 병사들의 책임만을 따지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19일 광주고 앞 최초 발포에 대해서는 ‘시민군이 장갑차에 불을 지르자 11공수 63대대 작전장교 차정환 대위가 방어차원에서 자체 발포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마저도 차 대위가 위협사격을 하려고 도로에 총을 쏘다가 시민 피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했는데, 이는 계엄군의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옮겨 쓴 수준이다.
5월 20일 광주역 앞 최초 집단발포와 관련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핵심 인물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김길수 3공수 16대대장을 통해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윗선으로부터 발포 지시를 들었다’는 증언을 받았으나, 이는 김 대대장이 3공수 작전참모 김종헌 소령에게서 들은 전언 진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김 소령에 대해서는 ‘조사에 불응해 조사하지 못했다’고만 보고서에 썼다.
강제조사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자행된 5월 21일 계엄군 수뇌부가 최고 수준의 비상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해 실탄을 분배했으나, 이 조치가 집단발포로 이어졌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아 의미를 축소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암매장에 대한 조사결과도 기존 5·18기념재단 등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발굴조사를 통한 유전자 조사를 했을 뿐 자체 발굴한 암매장지에 대한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 조사보다 후퇴=진상조사위 발족 계기가 된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해서는 ‘헬기 사격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며 오히려 과거 조사보다 후퇴한 결론을 내놨다.
진상조사위는 조선대 절개지에서 발견된 20㎜ 발칸포 탄두, 전일빌딩 층 탄흔 국과수 감정 결과, 26일 항공대장의 헬기 발포 명령과 27일 비행 조종사가 ‘사격 타깃 확인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점, 코브라 헬기 출동 당시 탄약 1000발씩을 무장하고 3분의 1가량을 소모한 채 복귀했다는 진술 등 헬기 사격에 대한 각종 증거를 모았다.
하지만 육군항공의 지휘관 조종사 등의 직접증언이나 사격 실행에 관한 문서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헬기에 의한 제압사격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는 애매한 답을 내리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 2020년 법원이 전두환씨의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관련 재판에서 ‘헬기 출동 당시 탄약을 3분의 1 소모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헬기사격이 실재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판시했는데도 그보다 후퇴한 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행불자에 대한 전수조사 또한 가족 진술 조사에 의존했는데, 조사 결과도 가족들이 과거 제출한 피해신청서 진술 내용을 반복하는 꼴이 됐다.
암매장 추정지에서 발견된 유골은 단순히 행불자와 유전자를 대조해 본 뒤 ‘관련자 없음’ 결론을 내놓고, 지속적인 추가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만을 달았다.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유해 262구도 5·18 연관성을 확인 못 해 ‘정체 불명’으로 남았다.
공군 전투기 대기설 또한 제1, 제10전투비행단 등지에서 전투기를 비상대기한 사실은 확인했으나 시민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왜곡 등 명백한 사실관계조차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한 진상조사위는 조사 과정마다 제기됐던 부실한 조사, 미흡한 검증 등을 조사보고서에서 그대로 드러냈다”면서 “재단은 전문가들로 구성한 전문위원을 통해 진상조사위의 불능과제를 철저히 살펴보고 향후 방향을 제시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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