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관객 400만 돌파 ‘노량’, 김윤석, 허준호 등 라인업
‘현장 이순신’의 면모, 화려한 영상미, 사운드 등 흥행 가세
경상우도 남해현 노량해협... 아득한 망망대해 저편에서 환한 불꽃 하나가 물살에 떠밀려온다.
정체 모를 빛을 보면서 불안해 하는 왜장 모리야츠가 스크린에 비춰지자 관객들은 함께 숨을 죽였다. 미동조차 없는 바다 위에는 오직 정중동의 불꽃 하나뿐, 작은 불씨는 흔들리는 촛불 같던 조선의 명운과 겹쳐 보였다.
이윽고 불길의 정체가 조선이 보낸 ‘볏짚을 실은 배’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왜군들은 아연실색한다. 전운을 느낄 새도 없이 쏟아지는 조선군의 포격, 잔잔한 바다에는 파란이 일고 왜군들은 그대로 수몰당했다.
1598년 정유재란 당시 노량 앞바다에서 펼쳐진 ‘노량해전’을 영화로 실견하는 순간이었다.
‘한산’, ‘명량’에 이어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에 종지부를 찍는 ‘노량’이 최근 400만 관객을 돌파,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1편 ‘명랑’에서 최민식이 이순신 역을 맡아 용맹한 용장(勇將)을, 이어 ‘한산’에서 박해일이 총명한 지장(智將)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노량’에서 이순신의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일까.
3부작 시리즈의 엔드게임에서 중역 이순신은 중견 배우 김윤석이 맡았다. 김한민 감독은 그에게 문무와 지혜를 겸비한 ‘현장(賢將)’의 모습을 ‘주문’했다.
작품은 크게 전반부의 드라마와 후반부 대규모 해상 전투 신으로 나뉘었다. 이 같은 서사는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서스펜스를 상영 내내 유지시켰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정재영 분)의 존재감도 컸다. 영화는 후반부의 해전 이전까지 명과 조선이 힘을 합하는 합종연횡(合縱連衡)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 과정에서 진린은 이순신에게 존경심, 권위의식을 동시에 내비추는 것으로 명과 조선의 긴장·이완 관계의 양면성을 드러냈다. 이순신에게 굳건한 신의를 보여준 부도독 등자룡(허준호)도 충·의라는 주제와 맞물려 감상의 묘미를 더했다.
조명 연합은 그저 “노량에서 왜군을 대적하다, 해뜨기 전 관음포로 유인해 섬멸시키는 것”이 전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고 전략도 단순명료했지만 조선사의 뒤꼍을 사수하려는 성웅의 선 굵은 카리스마와 전법은 관객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이순신을 다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도 ‘노량’만의 승부처로 보였다. 대쪽 같은 성품으로 대변되던 이순신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 장수 항왜군사 준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장면 등은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짐작게 했다.
“목숨을 걸지 마라. 고향에 가고 싶지 않느냐”라는 대사는 얼핏 보면 무능한 제독 원균의 어록 같지만 영화 속 이순신의 말이다. 그가 자신에게만큼은 높은 잣대를 들이 밀었지만, 충심 어린 부하장수들에게 얼마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다.
한편 이번 ‘노량’이 시리즈를 매조지는 ‘종결작’이라는 점 이외에도 흥행가도를 달리는 이유는 다양했다.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싸우는 아비규환의 대규모 야간해전이 그중 하나.
앞선 시리즈들에서 ‘거북선’의 위용, 이순신의 지덕체를 모두 보여줬던 탓에 이번 작품에서 관객을 ‘압도’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 그 방법 중 하나로 김 감독은 최대,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 그 자체에 주목했다. 암전이 된 듯 한 바다에서 쏟아지는 불화살, 포격소리, 조명 연합군과 왜군들의 수라장은 수려한 영상미, 사운드 등과 어우러져 전쟁의 참상을 보여줬다.
순천왜성을 둘러싼 조선의 위장함대가 적을 유인하고 2함대가 일본의 시마즈 함대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거북선이 등장했다. 이때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군에 맞서 조선군은 진린, 등자룡이 있는 명나라 수군과 합류하고 이순신의 1함대마저 출전하는 전략적인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주기 충분했다.
말미에서 명, 왜, 조선병사 등을 오가는 롱테이크로 촬영 기법도 압권이었다. 이 같은 촬영 구도는 영화 ‘킹스맨:퍼스트 에이전트’에서 그 유명한 ‘우산 전투씬’을 비롯해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등에도 활용될 만큼 역사 깊다. 카메라는 병사들을 오가며 공포, 분노, 절망, 희망 등을 낱낱이 보여주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결말은 관객들의 웃음기를 지워냈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아야 했”기 때문. ‘노량’의 부제가 ‘죽음의 바다’라는 점도 무겁게 다가왔는데, 그 죽음이 왜군과 이순신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노량’은 전국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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