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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류빈기자

[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콘크리트 유토피아’

by 광주일보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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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을 위한 지상 천국이자 상호 감시의 파놉티콘

영화에서 입주자 대표로 선출된 영탁(이병헌 분)

바야흐로 ‘아파트 전성시대’다. 꼭 아파트 만이 아니라도, 내 집 장만이 꿈이 된 작금의 세태에게 ‘아파트’란 ‘갖지 못할 안식처’를 표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 속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물질이 수단을 넘어 삶의 목표로 전도돼 버린 우리네가 공히 가엽기까지 하다. 팽배한 물질 만능주의의 거품이 바삐 사그라들고 이 전성기가 쓸쓸한 종막으로 향했으면 한다.

이 같은 뒤틀린 사회의 단면과 그릇된 욕망 등이 결집해 영화 한 편을 탄생시켰다. 지난 8월 개봉한 이래 대종상 6관왕이라는 왕좌를 거머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바로 그것. 영화는 12월 중순에 티빙, 넷플릭스 등 OTT에 공개됐다.

작품은 온 세상을 집어삼키는 원인 불상의 대지진과 함께 막을 올린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노후된 ‘황궁 아파트’ 103동만은 운수 좋게 온전히 살아남았고, 다른 생존자까지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아비규환을 이뤘다.

입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을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면서 뭉쳐 나갔다. 나름의 안식처가 된 황궁 아파트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기에 이들이 내건 “아파트 밖은 지옥”이라는 구호도 자못 이해가 갔다. 마을 지도를 펴고 탐사조까지 꾸려 외부로 물자 수색을 가거나, 철조망 등으로 방벽을 세워 외부인 출입을 엄금하는 모습 등은 체계적이었다.

대형 지진에도 불구, 우연히 살아 남은 황궁아파트 103동은 어느 타워팰리스 부럽지 않은 최고의 아파트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영화 속에는 온전한 유토피아란 없었다. 아파트 밖에는 굶주린 방랑자들이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엄동 혹한의 추위가 몰아쳤다. 사람들은 칼바람을 피해 아파트로 몰려들었지만 입주자들은 ‘외부인’에게 빗장을 걸어 잠궜다. ‘온정’을 청하는 외부인들의 방문을 거절하는 것도, 제한된 식량과 공간에도 낯선 이들을 들이는 마음도 일견 이해가 갔다.

아파트에 다가온 지진은 신의 형벌 그 자체였다. ‘네임벨류’에 따라 서로를 구분하고 황금만능주의, 아파트 입지주의 등에 빠진 어리석은 인류의 죄를 묻는 듯했다. 그 형구는 다름 아닌 ‘아파트’.

디스토피아 속에서 이기심으로 뭉쳐 ‘아파트 축제’를 벌이는 이들의 모습도 압권이었다. 조명에 반사돼 아파트 벽면에 커다랗게 맺히는 춤추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현대판 수라도를 방불케 했다. 콘크리트로 된 낙원 속에서 입주자들은 얄팍한 공동체에 속해 일시적인 자유와 권력 등을 만끽했고, 재난 상황임에도 주차장 한복판에서는 약탈한 식량들로 주지육림이 펼쳐졌다.

다만 영화 속 입주자들의 모임 또한 ‘견고한 공동체’는 아니었다는 점은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이들은 ‘전세’와 ‘자가 보유자’ 등을 나누면서 공동체 속에서도 신분의 차이를 두려 했다. 물론 현실을 영화로 비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2023년 오늘날을 그대로 탁본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계속 춤을 췄고 그 모습은 공포를 잊으려는 발악처럼 보였다.

영화는 특히 신혼부부 역할을 맡은 민성(박서준 분)과 명화(박보영 분)를 초점화해, 극한 상황 속에서 선과 악의 구분이 무화(無化)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민성은 입주자 대표라는 권력자의 편에 서서 식량을 가져 왔고,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위했다. 물론 그러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등 점차 악의 편에 물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명화는 몰래 숨어든 외부인들에게 보급품을 건네는 따뜻한 면모를 드러냈지만, 남편이 가져온 식량을 낯선 이를 먹여살리려 소진시켰다.

명화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선은 또 다른 악의 표정으로 읽혔다. 재난 속에서 주인공들이 취한 어떤 선택이든 비판할 수 있었고, 동시에 어떤 선택이라도 비판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모순 속에서 주인공들의 인간성은 끊임 없이 시험대에 놓였다.

외부인들을 가로막는 황궁아파트 입주자들. 결국 대치하던 외부인들은 대부분 밖으로 내몰려 동사했다.

한편 작품이 펼쳐지는 배경인 아파트가 복도식 구조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다. 복도식 구조는 내부가 훤히 보여 주민 간의 왕래를 누구나 상호 감시할 수 있고, 주차장 일대에서는 아파트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었다.

미셸 푸코는 일찍이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 형태 ‘파놉티콘’에서 착안, 인간을 감시하는 원형 감옥을 상상했다. 겉에서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물은 일종의 정보의 차이와 위계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감시자인 교도관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

이 같은 파놉티콘이 황궁아파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몰락한 세상 속에서 유일한 유토피아였던 ‘황궁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죄수들과 비교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화 속 아파트 동·호수는 죄인들의 수인번호(囚人番號)처럼 느껴졌다.

아파트의 권력자들은 높은 곳에서 내통하는 인원들을 감시했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처럼 ‘불순분자’를 색출해 그들의 문패에 붉은 페인트칠을 했다.

결국 내분과 외침으로 인해 몰락하는 ‘황궁’을 뒤로한 채, 민성과 명화는 아파트 밖으로 도망친다. 지쳐 있던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지진으로 인해 옆으로 누워버린 이름없는 아파트 주민들. 그곳은 피사의 사탑보다도 기울어져 있어, 벽이었던 것이 바닥이 되어 있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일종의 알레고리라면 명화와 민성은 도망친 곳에서 낙원을 마주한 셈.

새로운 아파트는 나름의 유토피아랄까... 사람들은 아파트 내부에 사다리를 설치하면서 ‘세로 아파트’에 적응해 갔다. 모든게 무너진 세계에서는 기존의 것만 수구하지 않고 천장을 바닥으로 활용할 정도의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유비적 메시지로 다가왔다.

명화(박보영 분)가 폐허가 되어버린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장면

이와 동시에 영탁의 운명도 끝으로 치닫았다. 그는 끝까지 콘크리트로 된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고수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즐거운 나의 집’을 우울하게 들려주면서 그릇된 욕망을 음악으로 오버랩했다.

영화를 곱씹으며 “왕이든 농부든 자신의 집에서 평화로운 이가 가장 행복하다”는 괴테의 경구를 떠올려 본다.

안온한 집은 그 자체로 사회의 겁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천국이다. 그래서인지 평화로운 집이 무너지는 공포보다 두려운 비극적 상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극한의 재난 상황을 선 제시한 뒤, 일상적 공간인 ‘집’을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해 자연스럽게 일상적 공포를 내면화시켰다.

저마다 초점을 맞추는 인물, 공감하고 몰입하는 대상, 입장차이 등에 따라 해석과 결말이 달라 보인 점도 감상 포인트였다. 영화는 극장가에서 총 384만 명이 관람했으며 현재는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에서 볼 수 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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