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천인소송 주도’ 故 이금주 다룬 오페라 공연 성료
“아무도 가지 않은 숲속이지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이금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조안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 고(故)이금주(1920~2021)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
27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펼쳐진 창작 오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가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내며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도왔던 이금주 할머니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공연은 컬쳐크리에이티브그레이스가 주최했으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협력했다. 극작 및 연출에 최민.
이금주는 생전 강제동원 피해자 1273명의 사연을 손수 기록해 일제강제동원 진상규명의 토대가 된 ‘광주 천인 소송’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80여 차례나 일본을 오가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수장됐던 ‘우키시마마루사건’을 세상에 알렸던 주역이다. 관부재판(시모노세키 재판) 등을 통해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기여를 했으며 강제동원특별법 제정에도 힘을 써 피해조사 및 구제에 앞장서기도 했다. 공연은 이 같은 비극적 삶을 초점화한 것.
막이 오르자 조선의 민요가 흘러 나왔고 스크린은 한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잠깐의 암전 뒤 책상에서 눈을 뜬 이금주는 자신의 결혼식 등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한다.
이윽고 “신식 결혼식을 올리더라도 조선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라는 배우의 외침이 들리고, 갑작스레 ‘펑’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꿈 같은 결혼식은 태평양 전쟁의 참상과 오버랩된다.
작품은 순수 민간 임의단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진행했던 천인 소송에 주목했다. 당시 일흔이 넘은 이금주 할머니가 패소를 각오하면서라도 법정 투쟁을 통해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던 일화를 오페라에 담았다. 수천 장 문서 앞에서 골머리를 앓던 이금주의 모습도 고스란히 극화됐다.
이금주 역은 소프라노 박준영이 맡았으며 어린 이금주·기자A 역은 소프라노 조안나가 열연했다. 동료A 역에 테너 장호영이 출연했으며 소프라노 문지안, 바리톤 이준희, 오창선 배우 등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 장면이 이금주 할머니의 유서와 육성으로 채워져 먹먹함을 주었다.
연출을 맡은 최민은 “이금주 할머니는 일본 법정에서 ‘역사는 쓰레기가 아니다’고 외쳤을 뿐 아니라 과거 일본이 펼친 과오를 바로잡고 사과받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이어왔다”며 “수많은 피해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법정 투쟁을 벌였던 이금주 할머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최류빈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룡, 풍어·풍년의 상징…‘비룡승운’ 비상하는 해 되길 (0) | 2024.01.02 |
---|---|
[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콘크리트 유토피아’ (1) | 2023.12.30 |
미래 교원 대상 국악실기연수 (0) | 2023.12.28 |
“솔로악기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트롬본’ 알리고 싶어요” (1) | 2023.12.25 |
영화 '서울의 봄' 천만 돌파 (0) | 2023.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