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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 51년 정광주 서예가 작품전
7~12일 예술의거리 광주미술관
서예 작품 명구 100선 엮은
‘꽃을 보며 새소리 듣네’ 발간도
장자의 가르침 가운데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길을 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학문과 예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돌아보니 지난달 더 깊이 있게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올해로 서력 51년을 맞은 금초 정광주(72) 서예가. 그에게선 전형적인 선비, 묵향의 이미지가 배어나온다. 차분한 어조로 ‘서예’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모습은 천상 선비다. 유한 느낌이지만 말에선 올곧음과 반듯함이 느껴진다.
어느 한 분야, 그것도 예술 분야에 반백년 넘게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에 한 시간씩 서예를 했다 해도 1만8250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2시간씩 정진을 했다고 하면 3만6500시간이다. 굳이 1만 시간의 법칙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가 써온 글씨, 그 글씨에 투영된 정신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서예를 공부하면서 문사철이 약하면 결국 철학의 빈곤에 봉착할 수 있다”며 “격이 높은 서예를 펼치기 위해선 성현들의 가르침을 글씨에 담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광주예술의 거리에 있는 광주미술관에서 전시회(7일부터 12일까지)를 여는 금초 정광주 작가를 만났다. 작품 설치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전시를 열게 된 계기, 지금까지의 활동을 비롯해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작가는 글씨를 쓴다는 생각을 초월해 글씨에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를 늘 화두로 삼아야 합니다. 글씨의 예술적 변형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지요. 명언명구를 비롯해 고전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때문이죠.”
이번 전시는 지난 2022년 광주문화예술상 본상(의재미술상) 수상과 관련, 저서 발간을 계기로 기획됐다. 정 작가는 서예작품 명구 100선을 엮은 ‘꽃을 보며 새소리 듣네’를 발간하고, 그것과 맞물려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됐다.
책에는 노자, 장자의 도가사상은 물론 논어, 맹자, 순자, 주자 등 유가 철학에서 교훈이 될 만한 글귀 등을 가려 뽑은 문구들이 수록돼 있다. 한비자의 법가사상과 금강경 법구경, 원효선사와 청허선사 등의 유와 무, 생과 사를 초탈한 불교철학과 관련된 명구들도 있다.
“옛 성현들의 충언을 서예 작품을 통해 읽다보면,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느낌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음과 귀를 맑게 하는 청량함을 받는다면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지요.”
전시실을 둘러보다 마음판에 새겼으면 하는 명구들과 마주한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가만히 몇 개의 문구를 읊조려 본다.
‘爲者常成 行者常至’(위자상성 행자상지-실행하는 자만이 항상 큰일을 이루고 쉼 없이 전진하는 자만이 항상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이른다, ‘晏子春秋’)
꾸준히 노력하며 실행을 하다보면 비로소 큰일을,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작만 요란하고 끝맺음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금초는 전서와 예서를 주로 써왔다. 고안한 맛이 나는 것이 전서라면, 예서는 서민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서체다.
“서예를 하기 위해선 전서체에 토대를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반찬을 만들 때도 오래된 간장, 고추장 등 양념을 써야 고유의 맛이 나겠지요. 마찬가지로 서예도 고아한 전서에 대한 공부가 돼 있어야 전통의 미를 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말은 자연스레 전시장에 내걸린 주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棄却甛桃樹 巡山摘醋梨
‘(기각첨도수 순산적초리-집 마당의 단 복숭아나무를 두고 온 산 헤매며 신 돌배를 따러 다니네)
사실 오늘의 풍조가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정 작가는 “진리와 깨달음을 밖에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과 내부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찾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신과 문화를 지켜가면서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야 세계화할 수 있지, 외국 것만 받아들이다 보면 정작 소중한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맛과 멋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함평 출신으로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3학년 때 서예동아리를 만들었다. 졸업 후 잠시 교사로 근무했지만 결국 서예의 길로 들어섰다.
“학정 선생님과는 보성 출신 송곡 안규동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대학 동아리활동을 하면서는, 제가 가르칠 수 없으니까 학정 선생님을 모시고 회원들과 함께 배웠어요.”
정 서예가의 글씨는 투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그럼에도 과감한 독창성이 엿보인다. 필법만 강조하지 않는다. 붓맛보다는 먹맛에 치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붓을 가지고 기교를 부릴 수 있지만, 그러다보면 먹의 깊고 중후한 맛을 따라갈 수 없다.
그는 서예뿐 아니라 전통미술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강조했다. 그가 주축이 돼 만든 ‘광주전통미술연합회’에는 서예를 비롯해, 한국화, 문인화, 민화 부문에 약 60명이 소속돼 있다.
“매년 전통 미술에 업적을 남긴 선배원로 1명씩을 추대해 시상을 하고 있어요. 일련의 활동이 계기가 돼 우리 것에 대한,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됐으면 합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올해로 서력 51년을 맞은 금초 정광주(72) 서예가. 그에게선 전형적인 선비, 묵향의 이미지가 배어나온다. 차분한 어조로 ‘서예’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모습은 천상 선비다. 유한 느낌이지만 말에선 올곧음과 반듯함이 느껴진다.
어느 한 분야, 그것도 예술 분야에 반백년 넘게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에 한 시간씩 서예를 했다 해도 1만8250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2시간씩 정진을 했다고 하면 3만6500시간이다. 굳이 1만 시간의 법칙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가 써온 글씨, 그 글씨에 투영된 정신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서예를 공부하면서 문사철이 약하면 결국 철학의 빈곤에 봉착할 수 있다”며 “격이 높은 서예를 펼치기 위해선 성현들의 가르침을 글씨에 담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광주예술의 거리에 있는 광주미술관에서 전시회(7일부터 12일까지)를 여는 금초 정광주 작가를 만났다. 작품 설치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전시를 열게 된 계기, 지금까지의 활동을 비롯해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작가는 글씨를 쓴다는 생각을 초월해 글씨에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를 늘 화두로 삼아야 합니다. 글씨의 예술적 변형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지요. 명언명구를 비롯해 고전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때문이죠.”
이번 전시는 지난 2022년 광주문화예술상 본상(의재미술상) 수상과 관련, 저서 발간을 계기로 기획됐다. 정 작가는 서예작품 명구 100선을 엮은 ‘꽃을 보며 새소리 듣네’를 발간하고, 그것과 맞물려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됐다.
책에는 노자, 장자의 도가사상은 물론 논어, 맹자, 순자, 주자 등 유가 철학에서 교훈이 될 만한 글귀 등을 가려 뽑은 문구들이 수록돼 있다. 한비자의 법가사상과 금강경 법구경, 원효선사와 청허선사 등의 유와 무, 생과 사를 초탈한 불교철학과 관련된 명구들도 있다.
“옛 성현들의 충언을 서예 작품을 통해 읽다보면,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느낌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음과 귀를 맑게 하는 청량함을 받는다면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지요.”
전시실을 둘러보다 마음판에 새겼으면 하는 명구들과 마주한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가만히 몇 개의 문구를 읊조려 본다.
‘爲者常成 行者常至’(위자상성 행자상지-실행하는 자만이 항상 큰일을 이루고 쉼 없이 전진하는 자만이 항상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이른다, ‘晏子春秋’)
꾸준히 노력하며 실행을 하다보면 비로소 큰일을,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작만 요란하고 끝맺음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금초는 전서와 예서를 주로 써왔다. 고안한 맛이 나는 것이 전서라면, 예서는 서민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서체다.
“서예를 하기 위해선 전서체에 토대를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반찬을 만들 때도 오래된 간장, 고추장 등 양념을 써야 고유의 맛이 나겠지요. 마찬가지로 서예도 고아한 전서에 대한 공부가 돼 있어야 전통의 미를 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말은 자연스레 전시장에 내걸린 주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棄却甛桃樹 巡山摘醋梨
‘(기각첨도수 순산적초리-집 마당의 단 복숭아나무를 두고 온 산 헤매며 신 돌배를 따러 다니네)
사실 오늘의 풍조가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정 작가는 “진리와 깨달음을 밖에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과 내부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찾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신과 문화를 지켜가면서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야 세계화할 수 있지, 외국 것만 받아들이다 보면 정작 소중한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맛과 멋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함평 출신으로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3학년 때 서예동아리를 만들었다. 졸업 후 잠시 교사로 근무했지만 결국 서예의 길로 들어섰다.
“학정 선생님과는 보성 출신 송곡 안규동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대학 동아리활동을 하면서는, 제가 가르칠 수 없으니까 학정 선생님을 모시고 회원들과 함께 배웠어요.”
정 서예가의 글씨는 투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그럼에도 과감한 독창성이 엿보인다. 필법만 강조하지 않는다. 붓맛보다는 먹맛에 치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붓을 가지고 기교를 부릴 수 있지만, 그러다보면 먹의 깊고 중후한 맛을 따라갈 수 없다.
그는 서예뿐 아니라 전통미술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강조했다. 그가 주축이 돼 만든 ‘광주전통미술연합회’에는 서예를 비롯해, 한국화, 문인화, 민화 부문에 약 60명이 소속돼 있다.
“매년 전통 미술에 업적을 남긴 선배원로 1명씩을 추대해 시상을 하고 있어요. 일련의 활동이 계기가 돼 우리 것에 대한,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됐으면 합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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