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에 통제되는 인간 디스토피아를 경험하다
빌 본&루이 필립 데메르 제작
단테 ‘10개의 지옥 심판대’ 모티브
DJ 조작에 따라 신체 움직임
자유 사라진 통제 비극적 모습 묘사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인간이 ‘문명의 정점’에 있다는 환상이 깨지는 절망적인 근미래(近未來).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2관에서 오는 19일까지 펼쳐지는 과학과 문화예술이 결합한 ACT페스티벌. 그가운데 개막일(10일) 열린 2023 미래전설 ‘인페르노’는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으로 각광을 받았다.
인페르노는 전자음악과 조명이 쏟아지는 전시장에서 참가자가 로봇 외골격을 입고 춤을 추며 작품의 일부가 되는 이머시브(몰입형) 퍼포먼스였다.
기자는 20kg에 육박하는 로보틱 슈트를 입고 ‘로봇’이 되어, 미래 문명의 발달이 가져올 가상세계를 체험했다. DJ의 조작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마치 인간이 기계에게 조종당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빌 본&루이 필립 데메르가 만든 작품 ‘인페르노’는 알리기에리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등장하는 ‘10개의 지옥 심판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인간의 신체가 외부 힘으로 통제되는 신곡 원작에서 착안해, 기계문명이 인간을 조종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
이 같은 설정은 영화 ‘신과 함께’에서 연옥에 빠진 죄인들이 저마다 업에 따라 무한히 회전하는 원추를 밀어야 하는 ‘나태지옥’ 등을 새로운 형태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작품명이 인페르노(지옥불·Inferno)라는 사실도 작가가 전달하려는 인간-기계, 통제-자유의 상관관계와 진의를 가늠하게 했다. 작품은 ‘통제’의 본성을 묻는 것처럼 다가와 다소 불편했다.
기자 외에도 총 11명의 참가자(1차)는 디제잉에 따라 하나의 팀처럼 군무를 췄다. 사전 안무 연습도 필요 없었다. 유압장치와 전자 신호 등으로 팔이 저절로 움직였기 때문. 불온한 주황색 조명 아래에서 춤추는 동안에는 기계 부속이 된 듯했다.
편리한 점도 있었다. 안무 중 특별히 다음 동작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팔과 고관절이 자동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품은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이론처럼 기계문명이 발전하면 어느 순간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를 떠올리게 했다.
공연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만물의 영장 ‘인류’가 기계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춤을 추던 중 기계 팔과 반대로 살짝 힘을 줘봤으나 슈트에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고 군무는 쉴 틈 없이 그저 계속될 뿐이었다. 비트가 꺼질 때까지 울려 퍼지는 전자음악과 조명, 연무도 ‘불길’함을 자아냈다.
말미에는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기계에 종속된 인류의 파멸적 미래를 연상하게 만드는 작가의 의도가 현실화되는 모습이었다. 지친 참가자들은 다수의 드레서(보조인력)를 배치해 언제든 중도 하차할 수 있도록 했다.
체험을 모두 마치고 나자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기계를 조종하는 DJ(루이 필립 데메르 작가)는 신곡 지옥편에서 단테의 길을 인도하는 ‘베아트리체’ 같기도, 인간에게 업화를 주는 염라(閻魔)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머시브 공연에 참가해보니 작품이 함의하는 메시지를 온몸을 통해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며 “미래 사회에 벌어질 지 모르는 기계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그려져 이색적이면서도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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