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장애가족의 비극…또 안타까운 ‘가족 살해’

장애 아들 3명·부인 살해 후 음독
5명 사망…남편 성범죄 혐의 입건
친인척 왕래 없어 사실상 고립된 듯
지난해 담양 세모녀 사건과 유사
전문가 “자식은 부모 소유물 아냐”
촘촘한 복지 통해 재발 막아야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영암의 한 농가에서 50대 가장이 부인과 장애 아들 3명 등 4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3월 담양 ‘세모녀 사건’, 5월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에 이어 또다시 ‘가족 참극’이 발생해 일그러진 가족주의 문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7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3시 50분께 영암군 영암읍의 한 농가에서 일가족 5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 주민이 연락이 되지 않자 일가족의 집을 찾았다가 주택 창문 등에 혈흔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가장 A(59)씨와 아내 B(56)씨, 20대 3명의 자녀(29·26·23)의 시신이 발견됐다.

집 안방에서 2명의 자녀와 B씨가 숨져있었고, 나머지 자녀 한 명과 A씨는 거실에서 숨져있었다.

경찰의 두 차례에 걸친 현장감식과 1차 부검 결과 가장 A씨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른바 ‘가족살해’로 추정되고 있다.

가족 4명의 사인은 흉기에 의한 타살로 추정되며 현장에서 흉기도 발견됐다.

경찰은 출입문이 잠겨있는데다 외부 침입 정황이 없는 점으로 미뤄 A씨가 가족을 해치고 자신은 음독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에 대한 1차 부검결과 사인은 약독물사로 추정됐고 집에서 독극물 병도 발견됐다.

A씨는 이달 4일 인근 마을에 사는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가장에 의해 숨진 가족들은 장애 때문에 사실상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숨진 20대 3명은 모두 등록장애인으로 고도 장애를 앓고 있었다. 한 명은 거동을 못하는 상태이고, 2명은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수준에 미달했다는 것이 이웃 주민들의 증언이다.

마을 이웃주민 김모씨는 “B씨도 외형적으로 조금 말랐고 거동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말이 어눌하고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결국 일가족 사망에는 장애인인 자녀들의 선택보다 A씨의 선택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3명의 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이들을 부양하는 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왕래하는 친인척이 거의 없어 사실상 고립된 가족이었다. 아내가 장애인 자녀 3명의 양육을 전담하고 A씨는 경제적으로 생계를 지탱해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3월 담양에서 4억 여원의 사기를 당해 두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하려던 담양 세모녀 사건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5월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앞바다에서 부모와 함께 숨진 조유나양 사건도 마찬가지다.

가족 살해가 잇따르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의 소유자라는 비뚤어진 사회통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시대착오적 발상이 지배적”이라면서 “고립된 가족이 많은 채무가 있거나 장애인 자녀를 두는 경우 추가로 사소한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촘촘한 복지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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