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뭉클한 이야기 하나쯤은 갖고 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지금의 나로 성장하게 한 이야기 말이다. 또는 누군가로부터 들은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지어지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이야기로 시작된다. 물론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것은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거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 오늘은 결혼식 기념일 일수 있고, 아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날일 수 있다. 그저 그런 일상의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야기가 있는 특별한 날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크고 작은 이야기가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되고 역사가 된다. 마치 작은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
안도현 시인은 평소 알고 지내는 분들에게 떼를 쓰듯 졸랐다. 이 황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뭉클했던 날들의 기록’은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안도현 시인에 따르면 필자 중에는 이름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이도 있고 생전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쓴 이도 있다.
책은 안도현 시인이 기획하고 엮은 두 권의 산문집 가운데 하나다. 다른 산문집 ‘사랑하고 싶은 순간들’도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야기를 풀어낸 이들은 20대 젊은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직업이나 관심사 하고 있는 일도 각기 다른 다양한 계층들이다. 모두 45편의 글들은 저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한 보자기씩 풀어준 것이다.
책에는 엄마를 생각나게 만드는 김치죽 이야기도 있고 사람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유기견을 돌보는 이야기도 나온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엄마의 안식년’(김추리)이야기는 황혼에 다다른 엄마가 인지능력이 떨어지면서 겪고 있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는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정확히 말하면 치매 진단을 받으면서 엄마는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인생 90년을 고단하게 사신 부모님은 비로소 안식년을 맞으셨단 말인가. 엄마의 눈을 피해 요양원 현관문 밖에 숨어서 부모님의 향기로운 새 날이 곧 열릴 것 같은 코앞의 내일을 눈물로 읽는다”고 소회를 밝힌다.
‘아버지의 넥타이’(최수웅)는 30년 양복점을 해오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더 이상 맞춤양복을 입지 않으면서 양복점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가게를 정리하던 중 작업대 밑에서 포장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발견한다. 예복을 맞추면 서비스로 내주던 사은품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가서 셔터를 내리라고 했다. 삼십년 동안 본인 손으로 열고 닫았던 문을. 철컹.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분명하게 느꼈다. 이제 한 시절이 끝났다고.”
이밖에 책에는 생후 2주 된 천연기념물 어린 산양을 구조한 이야기도 있으며 작은 선행으로 주변을 감동시킨 에피소드도 나온다.
한편 책을 엮은 안도현 시인은 “이 책의 필자들의 어조는 대부분 차분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페이지를 넘기다가 반드시 한번은 왈칵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이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더 각별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우리에게 가공하지 않은 감동을 선물해주신 필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몰개·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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