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장인 발굴 나서는 김재원 장흥귀족호도박물관장
65년 조청 생산·34년 광주일보 배달원 등 10명에 ‘한 우물패’
“직업 귀천 없이 장인 정신 갖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 돼야죠”
눈코 뜰 새 없이 급변하는 지금, 한 우물만 진득하게 파는 장인 정신이 필요한 때다. 수십 년간 ‘귀족호도’를 연구해온 김재원(65·사진) 장흥귀족호도박물관장이 장인을 찾아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관장은 지난 2021년부터 개인재산을 들여 장흥에서 30년 이상 한 길만 걸어온 장인에게 ‘한 우물패’를 전하고 있다. 수십만 원 상당 지압용 귀족호도(호두)와 격려금 등 한 사람에게 한 우물패를 주기 위해 드는 비용은 100만 원 가량이다.
장인의 이름을 얻는 데 정해진 직종은 없다. 올해는 34년 동안 광주일보를 배달해온 지역민과 32년 경력 짜장면 배달기사, 가전제품 수리 전문가 등이 ‘한 우물패’를 받았다.
시상 첫해에는 65년 이상 전통 조청을 생산한 대덕읍 주민과 63년 경력 이용사, 42년 삼합 요리 전문가, 35년 개인 택시기사, 32년 대나무발 장인 등 5명이 받았다. 지난해에는 50년 경력 미용사와 지역 오일장을 찾아다니며 분무기를 수리하는 장인 2명이 뽑혔다. 올해까지 한 우물패를 받은 10명 모두 직업이 다르다.
“한 우물패는 ‘시상’이라는 표현 대신 ‘선물한다’고 말합니다. 수십 년간 외길을 걸어온 공로에 대해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예고 없이 직접 그들의 작업 현장을 찾아갑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하루에 많은 분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초로(初老)의 중국요리 배달기사는 자신의 메신저에 한 우물패 사진을 올리고 ‘살다 보니 좋은 날도 있구나’라는 문구를 썼더라고요.”
김 관장이 숨은 장인을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는 이웃 주민들의 추천을 받거나 우연히 찾은 오일장이나 노포(老鋪)에서 장인을 발굴해왔다.
“14살 꼬마 때부터 일흔 넘게 이웃들의 머리를 손질한 이용사와 50년 넘게 호박엿을 만들고 팔아온 70대 주민, 모두 한 우물패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 동안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온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장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죠.”
김 관장은 해마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되면 지역에서 3명을 뽑아 한 우물패를 전할 생각이다. 장인을 대접하자는 취지를 이어가기 위해 후대에도 한 우물패 전달을 부탁해놓기도 했다.
“지금도 제 머릿속에는 한 우물패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여럿 떠오르네요.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자만이 인정받는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김 관장은 수십 년 연구 끝에 ‘장흥 호두’를 특산품 ‘귀족호도’로 재탄생시켰고, 15년에 걸친 자료수집과 3년간 집필 끝에 지난 2014년 호두관련 국내 최초 규범집 ‘장흥 귀족호도’를 펴내기도 했다. 2017년에는 산림조합중앙회 대한민국 임업인 대상을 받았다.
전남 22개 시·군에 50여 회원사를 둔 사단법인 전남도 박물관·미술관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들 청소년센터 이사장, 장흥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환원과 문화 증진에 힘쓰고 있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장흥=김용기 기자·중부취재본부장 ky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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