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지음
“다윈의 진화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 줍니다. 모든 생물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 주는 그런 이론이 있는 것은 그런 이론이 없었을 때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죠”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왜 다윈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두 부부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 부리를 연구했던 학자들이다. 이들은 갈라파고스 기후 변화에 따라 부리 크기가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이는 생명 진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BTS가 오늘날 세계적인 가수가 된 데는 ‘아미’라는 팬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미는 변방에 머물러 있던 BTS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견인했다. K팝의 슈퍼스타가 있듯이 생물학에도 슈퍼스타가 있다. 다윈이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팬덤의 역할이 지대했다.
다윈은 재야의 생물학자였다. 저명한 대학교의 교수도 아니었고 유명한 박물관의 연구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윈은 편지를 매개로 평생 2000명과 교류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다윈 서신 프로젝트’가 모아 놓은 편지만 1만4500통에 이를 만큼 ‘네트워킹의 귀재’다.
우리나라의 대표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다윈의 제자들을 만났다. ‘다윈의 사도들’은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최재천은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로 한국사회에서 행동 생태학과 진화 생물학을 개척하고 ‘통섭’ 개념을 정착시켰다.
이번 책은 왜 다윈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다. 구성은 ‘최재천이 묻고 세계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12명 인터뷰이의 면면은 화려하다.
앞서 언급한 갈파파고스 제도에서 다윈 핀치를 연구해 종의 분화와 생물 다양성 확대를 증명한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를 비롯해 자연 선택과 함께 다윈 진화론의 두 기둥 중 하나인 성 선택 개념의 형성에 이바지한 헬레나 크로닌, 진화 심리학의 최전선에서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연구한 스티븐 핑커가 있다.
또한 맨덴의 유전학과 DNA 이중 나선 구조 발견으로 다윈주의 통찰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리처드 도킨스, 종교 등 인문학적 문제들을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재구축하는 생물철학자 대니얼 데닛, 영장류의 정통후계자이자 유인원 언어 연구의 개척자 마쓰자와 데쓰로도 있다.
한마디로 책은 위대한 다윈의 제자들이 펼치는 ‘진화 사도 행전’이라 할 수 있다. 당초 책은 2012년 초판이 출간되고 2022년 개정 증보판이 출간된 ‘다위 지능: 최재천의 지화학 에세이’와 짝으로 기획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지난 2월 14일 타윈 탄생 214년째 되는 날 출간됐다.
책에는 다윈을 화두로 삼고 생물학부터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온 학자들의 통찰이 담겨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200년이 넘었지만 오늘날 생명과학 근본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고 경제 위기와 정치적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무엇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은 강렬하다. “다윈은 아마도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인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에 답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사이언스북스·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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