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보안사 명부 2292명 공개
전남대 91·조선대 34명 등 140여명
군대 끌려가고 프락치 역할 강요
전국 유일 고교생들도 대상자 포함
가혹한 고문·협박·폭행 뒤따라
진실화해위 “중대한 인권 침해”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고 ‘녹화사업’이란 이름으로 프락치(밀정) 역할을 강요받은 피해자들이 광주·전남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군사정권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등 반정부 성향의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정신교육을 통해 학원 프락치로 활용하면서 갖은 협박과 고문을 가했는데 광주·전남 학생들의 피해가 유독 심했다는 사실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의 조사로 공식 확인된 것이다.
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의결했다.
위원회는 이번 진실규명 조사를 통해 보안사령부가 가지고 있던 개인별 존안자료 및 관리대상자 명부 2922명에 대한 자료를 비식별 처리해 처음으로 공개한다.
위원회에 따르면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 명부에 작성된 징집대상 및 녹화사업 대상자 2922명 중 광주·전남지역 학생은 140여명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전남대 학생만 91명으로 지방대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어 조선대 34명, 목포대 5명 등 광주·전남지역 대학에서도 피해자가 많았다.
특히 광주·전남은 광주일고, 살레시오고, 목포 문태고·영흥고, 순천공고 등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등학생들도 대상자에 포함됐다. 고교때부터 동향을 관찰한후 졸업후 곧바로 군대에 강제 징집하고 녹화사업으로 활용한 것이다.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은 1970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돼 전두환 정권때 심화됐다. 독재 타도와 민주화 쟁취를 요구하던 학생들을 군대로 끌고가, 활동하던 조직과 동료들을 발설토록 하거나 심지어 허위 자백까지 받아냈다.
사회와 격리돼 강제로 군에 끌려간 이들은 장기간 구금 및 고문, 협박, 회유 등에 시달리며 동료 학생들의 동태 파악 등 사찰 임무를 부여하는 ‘프락치’ 행위도 강요받았다.
당시 조선대생으로 강제 징집돼 프락치 강요를 받은 김모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입대했는데 휴가를 나오거나 전역한 학생들의 동향 파악을 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보안대에 끌려가 당시 조선대 서클이었던 ‘이람회’의 활동과 김대중과의 관계 등에 대해 집중 추궁받기도 했다.
전남대 재학 중 강제 징집 당한 이모씨도 “진양분실로 불려가 유학생간첩단 사건의 강모씨 소재 파악 임무를 부여받고 5일간 광주에 내려간 적이 있다” 말했다.
이들 외에도 조선대생이었던 김모·안모 씨, 전남대생 이모 씨 등이 군대로 끌려가 진술서·반성문·서약서 등을 쓰고 친구와 선후배들의 동향을 관찰해 보고할 것을 강요당했다. 이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과 협박, 폭행도 뒤따랐다.
위원회는 이러한 강제징집 후 프락치 공작 사건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녹화공작’에서 ‘선도업무’라는 이름으로 명칭만 바뀐채 1987년까지 지속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몇 차례 강제징집·녹화사업·선도공작에 대한 조사가 진행돼 실체에 대한 규명은 어느정도 이뤄졌지만 정확한 피해자는 파악되지 않았다.
위원회는 이번 조사에서 피해자 규모와 함께 군사정권의 전방위적이고 조직적인 강제징집을 확인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정부 주도아래 더욱 정교해지고 폭압적이며 치밀해졌다.
진실규명 대상자 중 174명의 유형을 파악한 결과 60%에 해당하는 107명은 경찰이 법령을 위반해 강제 징집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무청은 입영대상자 명단 접수 즉시 국방부에 입영발생 지역 인원 및 예정시기를 보고했고, 국방부는 바로 입영부대와 입영 일시를 지정했다. 결국 모든 사항은 보안사령부 지시하에 필요한 지원이 제공됐고 부대배치 후 동태는 지속적으로 관찰됐다.
문교부(현 교육부)와 대학은 경찰로부터 명단을 받아 학칙 또는 직권으로 대상 학생들을 강제 퇴학 또는 휴학조치를 단행해 강제징집에 적극 협조한 정황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는 “23일 오전 10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피해자 9명도 참석해 피해 내용을 증언할 예정이다”면서 “강제징집과 사찰의 임무를 강제로 부여한 프락치 행위는명백히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다”고 규정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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