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우리는 모두 게놈의 자식 유쾌하고 기발한 과학상식
제목보다 부제가 먼저 들어오는 책이 있다. 부제는 책의 방향과 저자의 의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준거다. 제목은 다소 과장을 하거나 반어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부제는 책의 정보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책의 부제는 ‘과학과 친구가 되는 21가지 사소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들’. 일단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흥미를 가질 법하다. 사실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과학과 연계돼 있지만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게 일반적이다. 과학과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유발한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지난 2003년 창설한 과학 아이디어 공동체 ‘꿈꾸는 과학’이 펴낸 ‘컵라면이 익을 동안 읽는 과학’은 유쾌하고 기발하게 과학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담고 있다. 꿈꾸는 과학은 독서 토론을 매개로 과학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으며 지금까지 ‘일본 과학 대탐험’, ‘있다면? 없다면!’ 등의 책을 발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정재승 교수는 책 추천사에서 “엉뚱한 상상, 기발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청소년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 나왔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호기심을 해결하고 더 깊은 지적 즐거움으로 탐구해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책은 주 독자층이 청소년이지만 일반인은 물론 평소 과학을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에게는 유용할 것 같다.
다루고 있는 각각의 주제들도 예사롭지 않다.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 게놈의 자식입니다!’, ‘뇌가 우동사리처럼 생겼다고?’, ‘내 몸 속에 사랑의 묘약이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등이 그러한 예다.
흔히 행실이 나쁜 사람에게 내뱉는 욕 가운데 “이 개놈의 자식아!”라는 말이 있다. 듣는 이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욕을 들었을 때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그래, 난 게놈의 자식이지~!’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게놈의 자식’일까?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복합어로 ‘한 생명체의 특징을 결정하는 정보’를 일컫는다. 게놈 프로젝트 덕분에 사람들은 간단한 유전자 검사로도 특정 질환 발병률을 알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는 게놈에 따라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도 게놈의 도움을 받으니 정말 게놈의 자식이죠?”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의 본질적인 임무는 유전 정보인 게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데 있다.
‘개미를 너무도 닮은 인간’이라는 주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개미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인류는 농업혁명을 계기로 정착과 집단생활을 시작했다. 대략 기원전 7000년이다. 개미는 인간보다 앞서 농사를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가위개미는 지구상에서 복잡한 사회를 이루는 곤충이다. 가위개미 군집 하나에는 약 800만 마리 이상의 개미가 속해 있다. 개미굴은 직경 30m, 변두리 굴까지 합치면 80m가 넘는다.
“개미는 농사를 지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집단면역을 형성하고 방역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개미가 치명적인 곰팡이에 감연되면 감염된 개미는 개미굴에 들어오는 것이 통제됩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우리의 속담을 과학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주제다. 똥이 서구에서 유명세를 탄 것은 1960년대부터다. 당시 의사들은 수술 시 세균 감염이 큰 문제였다. 환자들에게 다량의 항생제를 투여하면 설사를 하게 되었다. 미생물학자이자 의사인 스탠리 팰코는 ‘똥’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수술 전 환자 똥을 채취해 둔 후 환자에게 복용하게 했다. 장내 미생물 효과 때문에 설사가 멈춘 것이다.
저자는 장내 미생물이 건강을 좌우하기에 장내 미생물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언젠가 대변을 기증하면서 돈도 벌고 생명도 구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궁리·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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