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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기자

“공순이라 놀림받아도 가족 위해 일했죠”

by 광주일보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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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성가족재단 구술 채록집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발간
1950~70년대 광주 방직공장
6인 여성 노동자의 삶과 역사

1999년 촬영된 전남방직.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방직산업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심산업이었다. 광주에는 각각 ‘전방’과 ‘일방’이라고 불려지던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두 공장이 방직산업을 이끌었다.

1970년대 기준 이 두 공장의 노동자들은 6000명에 달했다. 특히 수많은 ‘여공’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은 비숙련노동을 집중 담당했다. 덥고 습한 작업환경에서 매일 단순 노동을 반복했다. 여공이라는 말보단 ‘공순이’라는 말을 들으며 ‘공순이’라 놀림받아도 가족을 위해 자존감을 버리고 교대근무를 마치고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귀가했던 여공들. 광주여공 이야기를 담아낸 한 권의 책이 출간 됐다.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는 한국전쟁 후인 1953년부터 임동 일신방직이 가동을 멈추기 직전인 2019년 사이 근무했던 광주 방직공장의 역사와 함께 한 이들의 이야기로, 광주 방직산업의 역사와도 같다. 고인선(가명)·노미례·김옥희·김복희·김은경·정미숙 여공 6명은 자신들이 겪었던 방직공장에서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여공 생활은 3교대 근무와 철야 작업으로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야말로 솜과의 전쟁이었다. 그래도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고된 노동의 고통은 잊혀지곤 했다.

1953년 전남방직에 입사했던 고인선(1935년생)씨는 “방직회사 업무는 코피를 쏟을 만큼 고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로지 가족을 위해 솜먼지와 씨름하며 열심히 했다. 힘든 회사 일을 끝내고 쉴 때면 친하게 지낸 동생이 찾아와 나란히 누워 놀던 시간은 지금도 미소를 자아낼 만큼 행복했다”며 “첫 아이 만삭때까지 교대근무를 했고 퇴사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생활고에 재입사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자식들을 키우느라 겪었던 생활고가 전남방직 근무보다 더 힘겨웠다. 가족들은 ‘그렇게 몸 바쳐 뒷바라지 해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노고를 인정해주며 고미워한다”고 말한다.

광주여성가족재단 구술 채록집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앞만 보고 고개숙이고//다람쥐 챗바퀴 돌고 돌아// 굳은살 박힌 발바닥으로 굳은살 박힌 손바닥으로//굵은 땀방울 흐르고 흘러 겨드랑이마저 짓물리고 나서야//소금꽃으로 피어났네//사지육신 뼈마디에서 진액까지 쏟아내고서야//담장 밖으로 밖으로 탈출한 우리들//(중략)‘’온 몸으로 뼈 녹아 흘러 흘러 핀 소금꽃.” 위 시 ‘소금꽃’은 10년 넘게 일신방직에서 일했던 정미숙(1963년생)씨가 노동의 경험을 담아 써내려간 시다. 시는 책의 제목으로 차용됐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궁핍했던 그 시절 여성 노동자들이 감내해왔던 노동의 시간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어머니와 자매들을 만나게 된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이 수행해온 주체적인 역할이 줄곧 외면 받아왔다는 사실에 다가가게 된다.

이번 방직 여공들의 구술채록집은 광주여성가족재단의 광주여성 생애구술사의 첫 기획이다.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구술채록과 집필은 광주여성구술채록단이 힘을 보탰다. 광주여성 생애구술사 작업은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의 경험을 기록하고 역사화하는 일이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은 다음 기획으로 전통시장 여성상인 구술채록을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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