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이 도시를 건설하고 다스린 사회는 청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을 거라 짐작된다. 정교한 배수시설과 공중목욕탕 흔적 때문이다. 건물 규모도 크고 유물 가운데는 도기를 비롯해 상아 공예품 등이 출토됐다. 이곳은 지난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위에 열거한 도시는 어디일까? 바로 파키스탄의 고고학 유적지 모헨조다로이다. 이곳은 기원전 2500년에서 기원전 1700년 사이에 인더스강 부근에서 번성한 문명 중심지다. 언급한대로 위생적인 수준이 꽤나 높다. 또한 불에 구운 벽돌 건물이 격자 구조로 배치돼 있어 정교하고 체계적이다.
1850년대 철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붉은 석조물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공사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이들이 체계적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도시는 무려 5km 가까이 뻗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마침내 모헨조다로가 인류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사라진 또는 사라져가는 장소들을 모티브로 한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는 특별한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지난 2020년 영국 에드워드스탠포드 ‘올해의 여행책’에 선정된 바 있다. 영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트래비스 엘버러가 저자로, 그는 지금까지 ‘여행하며 보낸 일 년’, ‘런던에서 보낸 일 년’ 등의 작품을 펴냈다.
책에는 모헨조다로, 하투사, 마하발리푸람, 페트라, 알렉산드리아, 찬찬과 같은 도시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과거의 지도에서 상당 부분 잊히거나 사라진 곳들이다. “옛모습의 그림자이거나 단순한 폐허”로 환기되는 도시들이다.
저자는 모두 37곳의 장소를 탐험한다. 지도 44장과 도판 77장을 매개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다.
터키의 하투사는 히타이트제국의 중심지였다.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히타이트는 유대인들과 맞선 세력들로 중동 지역 또는 지중해 전역에 퍼져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하투실리스 3세의 군대가 기원전 1279년경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 인근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1834년 프랑스 고고학자 샤를 텍시에가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을 탐험했다. 그는 수도 앙카라에서 160km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폐허를 발견한다. 이후 독일 고고학자 후고 빙클러가 수십 년간 천착한 끝에 마침내 히타이트제국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전성기 시대의 면적이 “고대 세계사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해질 만큼 광대하다.
남아메리카 고대 도시 콜롬비아의 시우다드페르디다는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도굴꾼에 의해 중요 유적들이 도난을 당한 상태였다. 이보다 훨씬 앞선1578년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귀중품을 죄다 가져갔다.
저자는 “하지만 시우다드페르디다를 결코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토착 원주민 부족인 코기족이다. 코기 사람들은 시우다드페르디다 인근에서 수 세대에 걸쳐 살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들은 유럽 정복이 있기 전 서기 800년경에 본거지 테이우나를 건설하기도 했다. 페루의 맞추픽추보다 650년 앞섰다.
이밖에 책에는 2004년 쓰나미로 자취를 드러낸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을 비롯해 로마제국의 최남단 도시 팀가드 같은 도시가 등장한다. 또한 기후 위기로 사라질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한겨레출판·2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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