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까지 문화창조원
무등산 생태·제주 천지연 폭포 등 인간과 생태계 관계 재해석
‘주룩주룩’
전시장에 들어서자 빗물이 연신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다. 천장에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이 기다란 선이 끊기듯 바닥으로 떨어진다. 흩어진 빗방울은 바닥에 뿌연 잔해로 남는다. 비 오는 날의 풍경처럼 지극히 실재적이고 생생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빗물이 아닌 물방울 이미지와 소리가 결합된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흔히 빗물이나 굵은 물줄기가 흘러 내릴 때 ‘주룩주룩’ 내린다고 표현한다. 전시장은 장마철 시골 한옥의 처마를 그대로 옮겨온 분위기다.
리경 작가의 작품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는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제주 천지연 폭포를 빛과 사운드라는 매체로 재해석했다. 천지연 폭포의 순환적인 구조를 물방울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한 것.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제목처럼 전시장을 통과한 이들은 물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이강현·ACC)이 오는 9월 12일까지(오전 10~오후 6시, 수·토 오후 8시까지) 복합 3·4관에서 열고 있는 ‘아쿠아 천국’전. 이번 융복합 전시는 기후위기 시대 생명 원천인 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담론으로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프랑스 출신 작가 11명이 14점 작품을 출품했다. 물의 서사를 담은 작품은 다양한 상징과 가치, 역사를 포괄한다. 신화와 전설에 깃든 물, 수탈의 역사가 담긴 물, 인간 무의식에 드리워진 물, 생태계를 조율하는 조절자 등 물의 기호적 의미는 다양하다.
전시장에는 오늘날까지도 영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술루해(海)를 구현한 작품도 있다. 이 이란의 사진 연작 ‘술루 이야기’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술판 술루국이 지배했던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자리한 탓에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곳은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거쳐 반정부세력과 무장단체의 거점이 됐다.
물을 벽화작품으로 묘사한 작품도 이채롭다. 인도네시아 작가 마리안토가 목탄으로 그린 ‘띠르타 페르위타사리’는 ‘생명의 신성한 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신화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 부드러우면서도 세세한 이미지는 물성이 지닌 원초적인 분위기를 환기한다.
권혜원의 ‘액체비전’은 영산강 근원인 무등산 생태와 경양방죽 인공호수 역사를 탐색한다. 물고기 시선으로 바라본 물속과 물위의 풍경이 비디오 화면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작품은 무등산에서 발원해 계곡을 지난 습지, 강으로 흘러드는 공간을 대상화했다.
무엇보다 작품은 인간의 시각으로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 아닌 물고기와 같은 생명체의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본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계절에 따라 변하듯 화면의 색이 변하는 장면은 물의 이미지와 맞물려 환상적인 시각 효과를 준다.
융 심리학에서 영감을 얻어 물성을 상징화한 빠키 작가의 ‘무의식의 원형’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융이 말하는 무의식 구조를 물을 모티브로 상징화했다. 물의 입자처럼 보이는 빨간 조형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물의 성격을 오롯이 드러낸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의 역할을 담아낸 작품도 있다. 에코 오롯의 ‘바다의 눈물’, ‘제주산호뜨개’, ‘플라스틱 만다라’가 그것.
특히 ‘제주산호뜨개’는 산호를 뜨개로 뜨는 작업을 매개로 산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해양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산호의 죽음은 해양생태계에 닥친 위험의 지표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번 ‘제주산호뜨개’는 제주도의 연산호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는데 유기적인 형태의 산호가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자유스럽게 산호를 뜰 수 있도록 뜨개 용 실이 마련돼 있다.
‘플라스틱 만다라’는 모래사장을 기어다니며 주운 플라스틱 조각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작가가 바다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하나 줍는 과정은 오염돼 가는 바다의 고통과 동일시된다. ‘만다라’에는 바다에 대한 애도와 축복의 마음이 투영돼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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