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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칼럼6

[서효인의 ‘소설처럼’] 솔직하고 유려하기 -임지은 산문집 ‘헤아림의 조각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에세이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을 뜻한다. 여기서 일정한 형식은 아마도 시나 소설, 희곡이라는 장르의 문법을 이르는 말일 터다. 즉 에세이는 장르라는 외피를 던지고, 작가의 느낌이나 체험을 쓰는 글이다. 하나 느낌이나 체험을 쓰는 글이라는 말로 에세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거의 모든 글은 각자의 느낌이나 체험이 재료가 되니까. 일기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글도, 노트 구석의 낙서마저도 그렇다. 그것들 모두를 에세이라 부르게 주저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에세이에는 위의 글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 특별함은 솔직함과 유려함의 균형에서 비롯될 것.. 2023. 6. 17.
[서효인의 소설처럼] 편의점 사람들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동네마다 편의점이 있다. 아니,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다. 1990년대 일종의 신사업으로 등장한 편의점은 최근까지 확장 일로였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로서 규모의 경제에 성공해 슈퍼마켓은 물론 구멍가게와 소형 마트까지 접수하였고, 이제는 그 숫자와 밀집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상권이 위축되면서 편의점도 그 활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2020년 기준 전국 편의점 숫자는 4만 개가 넘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하루면 배달이 완료되는 인터넷 몰도 우후죽순 생겼다. 이렇듯 경쟁은 심해졌고, 인건비와 기타 비용은 상승하는 동시에 24시간 운영이라는 족쇄는 여전하니, 동네 장사라고 하여 마냥 편하고 안정적일 리가 없는 것이다.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주된.. 2022. 3. 27.
[서효인의 소설처럼]북해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찾다 -우다영 장편소설 ‘북해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저잣거리의 마당놀이까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을 홀려왔다. 많은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홀림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최초의 이야기는 아마 말 그대로 이야기였을 것이다. 입에서 귀로, 귀에서 생각으로, 그 생각이 다시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구전(口傳)이라고 부른다. 문자를 쓰기 시작하고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야기는 이제 글로 남겨진다. 그러나 문자는 상당 시간 종교적·사회적인 쓸모로 복무하였다. 그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글자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소설’이라는 장르는 근대 문화의 소산으로서, 소위 부르주아나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소설의 시대 이후 얼마 있지 .. 2022. 1. 1.
[서효인의 소설처럼] 작고 단호한 연대-이유리 ‘왜가리 클럽’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양미네 반찬’은 지난달 10일에 망했다.” 우리가 아무리 ‘죽겠다’와 ‘망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부정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업이 망하는 것은 말버릇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주인공의 사업은 안타깝게도 지난달 10일 해당 관할 구청에 폐업신고를 했다. 처음부터 망할 기미나 징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업 초기에는 장사도 꽤 잘되었다. 입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반찬도 열심히 만들었다. 이런저런 마케팅에도 힘썼다. 그러나 개업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점점 줄어들던 수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내리막길이었다. 몇 달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버텼지만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리였다. 그렇게 양미네 반찬은 망해..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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