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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칼럼니스트6

[고규홍의 ‘나무 생각’] 민족의 염원을 담고 살아남은 심훈의 상록수 해마다 팔월이면 우리 민족이 삶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그들이 남긴 삶의 자취를 찾아 바라보면서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 온 이 땅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많은 나무 중에서도 특이하게 민족 해방의 염원을 담고 살아온 나무가 있다. 충청남도 당진 ‘필경사’라는 오두막 곁에 도담도담 자라난 한 그루의 향나무가 바로 그런 나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민족 해방 운동에 헌신한 심훈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다. 신문기자 생활을 했던 심훈(沈熏, 1901∼1936)은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절창의 시편을 모아 시집 ‘그 날이 오면’을 내려 했으나 일제의 검열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충남 당진군 부곡리로 찾아들었다. 1932.. 2021. 8. 6.
[고규홍의 나무 생각] 꽃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 나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더 멀리 씨앗을 퍼뜨려 생존 영역을 확장하는 건 모든 나무의 생존 본능이다. 사람의 눈에 뜨이든 안 뜨이든, 세상의 모든 나무는 꽃을 피운다. 꽃 피고 지는 시기로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그럴 만큼 계절의 흐름이 혼란스럽던 지난봄에도 나무들은 제가끔 자신만의 꽃을 피웠다. 꽃 지자 이제 열매 맺고 씨앗을 키울 차례에 돌입했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밋밋하든, 모두가 꽃을 피우던 지난봄. 무화과나무는 꽃도 피우지 않고 열매부터 먼저 맺었다. 그리고 여느 나무들이 도담도담 열매를 키워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여름 햇살을 한껏 받아들이며 한창 열매를 키우는 중이다. 꽃(花) 없이(無) 열매(果)를 맺는다는 뜻의 이름처럼 무화과나무는 정말 .. 2021. 6. 12.
[고규홍의 ‘나무 생각’] 60년에 한 번 꽃 피우는 신비의 식물 세상의 모든 나무는 꽃을 피운다. 꽃은 자손 번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절차로, 모든 식물의 생존 본능에 따른 필수적 현상이다. 그러나 생김새나 피어나는 시기가 제가끔 다른 탓에 꽃을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있다. 이를테면 느티나무의 꽃은 4월쯤에 피어나지만, 관찰하는 건 쉽지 않다. 큰 몸피와 달리 느티나무의 꽃은 지름 3밀리미터 정도로 작게 피어나는데다 황록색의 꽃이 잎겨드랑이 부분에서 피어나서 잎사귀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꽃이 피어도 일쑤 스쳐 지나기 십상이다. 꽃이 피어나기는 하지만,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꽃을 보기 어려운 나무로는 대나무도 있다. 대나무의 개화에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들어 있다. 우선 꽃이 하나의 나무에서만 피어나지 않고 더불어 자라던 대숲의 .. 2021. 1. 24.
[고규홍의 ‘나무 생각’] 자작나무의 겨울나기 비결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겨울 숲에 바람이 차다. 모든 생명이 움츠러드는 겨울, 나무는 맨살로 거센 바람을 이겨 내야 한다. 추위를 견뎌 내는 비결이야 나무마다 제가끔 다르겠지만, 추위를 아주 잘 견디는 나무로는 자작나무만 한 것도 없다. 자작나무는 오히려 하얀 눈이 쌓인 겨울 풍경에 더 잘 어울리는 나무다. 자작나무는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나무이지만, 중부 이남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이 자작나무가 자랄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다. 평안도의 시인 백석은 ‘백화’(白樺)라는 짧은 시에서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라며 자신이 사는 평안도 산골이 ‘온통 자작나무’라고 쓰기도 했다.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풍경의 산골을 지금 가 볼 수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황홀지경에 빠지.. 202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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