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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고규홍의 ‘나무 생각’] 자작나무의 겨울나기 비결

by 광주일보 202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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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겨울 숲에 바람이 차다. 모든 생명이 움츠러드는 겨울, 나무는 맨살로 거센 바람을 이겨 내야 한다. 추위를 견뎌 내는 비결이야 나무마다 제가끔 다르겠지만, 추위를 아주 잘 견디는 나무로는 자작나무만 한 것도 없다. 자작나무는 오히려 하얀 눈이 쌓인 겨울 풍경에 더 잘 어울리는 나무다.

자작나무는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나무이지만, 중부 이남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이 자작나무가 자랄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다. 평안도의 시인 백석은 ‘백화’(白樺)라는 짧은 시에서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라며 자신이 사는 평안도 산골이 ‘온통 자작나무’라고 쓰기도 했다.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풍경의 산골을 지금 가 볼 수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황홀지경에 빠지게 된다.

흰빛이 나는 줄기를 가진 나무는 자작나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흔히 ‘자작나무 삼형제’라고 부르는 자작나무과의 나무로,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가 그것이다. 역시 추운 기후를 좋아하는 나무여서, 태백산이나 설악산 등 백두대간의 높은 산에서 자란다. 하지만 개체 수가 많지는 않다.

자작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중부 이남 지역에서도 자작나무를 심어 키우는 곳이 적지 않다. 경북 봉화의 국립 백두대간수목원도 자작나무원을 조성해 자작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키우는데, 관람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또 약 30헥타아르 규모에 이르는 영양 수비면 자작나무 숲도 지자체 및 관련 기관의 집중적인 육성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꼽을 수 있다. 산림청이 1989년부터 138헥타아르(약 41만 평) 규모의 산지에 69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키운 아름다운 숲이다. 이 숲은 원래 소나무가 무성했는데,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하자 모두 베어 내고 자작나무를 심어서 30년 만에 명품 숲을 이루어 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자작나무의 가지를 불에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 해서 붙었다. 마찬가지로 불에 탈 때 ‘꽝꽝’ 소리를 내는 나무여서 꽝꽝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도 있다. 두 나무 모두 같은 유래로 붙은 이름이지만,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묘하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여러모로 좋은 느낌의 나무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으니, 평균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대개 100년쯤 살면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본다. 천년을 사는 소나무나 느티나무·은행나무와 비교하면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종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글을 쓰는 데도 많이 이용했다. 0.2밀리미터 정도로 얇게 잘 벗겨지는 껍질은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이를테면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天馬圖) 역시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자작나무의 영문 이름 버취(Birch) 도 ‘글을 쓰는 나무 껍질’이라는 뜻이다.

자작나무가 영하 30도의 추운 날씨에도 버텨 낼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이 줄기 껍질의 특징에 있다. 얇은 껍질은 여러 겹으로 자작나무 줄기를 둘러싸는 데다 기름 성분까지 들어 있어서 보온 효과를 극대화한다. 혹한의 추위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이 기름 성분은 자작나무 줄기를 썩지 않게 하는 기능도 한다.

기름 성분이 들어 있다 보니 불에 잘 붙는 자작나무를 사람들은 불쏘시개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작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방이라 해도 자작나무 기름을 뽑아내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사람들은 애써 모은 자작나무 기름을 소중히 보관했다가 귀한 행사에만 사용했다. 자작나무 기름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때가 바로 혼인 잔치였다. 잔치를 상서롭게 진행하기 위해 밝히는 촛불의 기름으로 쓴 것이다. 자작나무 ‘화’(樺) 자를 이용한 ‘화촉’(樺燭: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근원도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화촉을 밝혀야 할 일까지 나중으로 미루는 일이 벌어지는 날들이 이어지는 요즈음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화촉을 밝힐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다려 보는 ‘자작나무의 겨울’이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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