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의 전쟁이다. 완전히 지는 싸움은 아닌가 보다. 백신과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옛날,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변변한 약도 없이 인류는 전쟁을 치렀다. 지는 전쟁 같았다.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인류는 다시 일어섰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당시 우리나라도 곤욕을 치렀다. 인구 1800만 명의 20퍼센트 가까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무려 300만 명이었다. 당시 통계로만 봐도 그러하니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다. 의료 시스템도, 약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스페인독감은 물러났다.
그러나 인류는 교만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처럼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바이러스 질환이 퍼져 나갈 때 고통을 겪으면서도 대비를 잘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전문가들은 수많은 경고를 발령했지만, 세계 사회는 이 정도의 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페인 독감은 대략 10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인류는 3000~5000만 명의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당대, 비록 사망자 숫자는 적지만 코로나가 준 충격은 엄청나다. 삶이 파괴되고, 시스템의 혼란으로 미래에 대한 회의가 인류를 휩쓸 것 같다. 당장 우울증 처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스페인 독감은 변변한 의료적 준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와 달리 현대 사회는 훨씬 역동적이고 복잡해졌다. 코로나로 발이 묶이는 것이 죽음에 가까운 위기가 되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는 방역을 잘했고, 잘하고 있다. 일상이 붕괴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에 있는 내 지인은 “거대한 우울이 사회를 덮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경우 2020년 총생산이 20퍼센트는 줄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매우 적다. 한 자리 수, 그것도 5퍼센트 미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존’ 사회로 가면 그런 수치와 다른 나쁜 징후가 보인다. 우선 경제적 문제의 심각함이다. 가게, 특히 식당과 카페나 노래방처럼 숫자가 많으면서 경기에 민감한 종목의 타격이 컸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었지만 해갈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업종 대부분의 수입이 감소되었고, 그것은 여파가 되어 곧 기업들의 고용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당장 명예퇴직과 해고 등은 늘고 재고용은 감소할 것이다.
오랜만에 머리를 깎았다. 코로나 때문에 접촉이 줄다 보니, 용모를 따질 계제가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노량진의 고시촌에서는 남자 커트가 6000원이다. 그곳의 미용사는 “고시촌 고시생들도 머리를 안 깎아요. 돈이 없는 거죠. 면접 보러 갈 때 한 번씩 깎을까나”하며 우울해했다. 이런 직종은 영업시간 단축 영향도 받지 않는지라 지원금도 없다.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데도 그렇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도 해 준다. “요새 면도기도 잘 안 팔린답니다. 재택근무가 많고 마스크 쓰고 다니니까 면도를 매일 할 필요도 없는 거죠.”
아이엠에프는 생각보다 빨리 벗어났다. 당시 우리 국민의 저력은 세계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다 떨쳐버린 것 같은 우리들에게는 고통이 아직 남아 있다. 또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닌지, 해고와 폐업과 가족의 해체 같은 그 당시의 문제들이 다시 상기되는 것이다. 코로나를 일 년 겪으면서 그 시절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여러 지표들이 그 정도 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바닥 분위기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매출 절반 내지는 최대 8할 정도 줄어든 집도 많다. 술집들과 카페가 특히 그렇다. 술집은 5인 이상 집합 금지와 9시 단축 영업, 카페는 착석 취식 금지 때문이다. 물론 재택 등으로 사람의 활동량이 줄어든 것도 크다. 방역 기준을 준수해야 하니, 당장 가게의 괴로움도 토로하지 못한 채 참고 있다.
역삼동에 잘 아는 밥집이 있다. 늘 점심과 저녁 장사로 미어지는 곳이다. 어느 날 지나가는데, 아침 6시부터 ‘조식’을 판다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사정을 들어보니, 매출이 반토막이 나서 월세와 인건비를 메우려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점심이 많이 팔리는 식당은 9시 영업시간 제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는 얘기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이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식당 사장님들은 입술을 깨물며 버티고 있다. 봄이 오겠지 하면서.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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