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일 신작·전기 삽화·정신병원 스케치 100여점 전시
메이홀 10주년 기념전 오늘 오픈식…노래 공연, 주먹밥 나눔 행사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상호(63) 작가의 광주 예술의 거리 작업실 벽에 붙어있던 글귀를 지금은 메이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을 때 인연을 맺은 고(故) 한승원 변호사, 친일 인명사전을 만들었던 고 (故)임종국 선생, 지선 스님의 사진도 보인다. 모두 그의 삶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오월의 흔적’을 찾아 광주를 방문하는 이들이 꼭 들르는 광주정신 메이홀(광주시 동구 문화전당로 23번길 1)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이상호 초대전을 4일부터 25일까지 연다.
‘눈 감고, 눈 뜬 오월의 사람들’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초대전에는 100여점의 작품이 나왔다. “신작과 함께 인물전기 삽화, 정신병원 스케치 연작까지, 그가 흥얼거리는 휘파람소리까지 채집하여 부려놓고 싶었다”는 임의진 메이홀 관장 초대글처럼 이번 기획전은 2·4층을 전시장으로, 3층은 작가의 방으로 꾸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민중미술 작업을 꿋꿋이 이어가는 이 작가는 오랜 시간 정신질환과 싸워왔다. 조선대 미술학과 3학년 때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 수없이 구타당한 후 닥친 불행이었다. 6월 항쟁 때는 걸개그림이 발단이 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됐고, 30여년간 나주정신병원을 수차례 오고 가는 삶이 계속됐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 그는 4년여부터 그림에 매진했고, 지난해에는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는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은 1980년 5월27일 도청에 남아있던 16명을 그린 작품이다.
“오월 그림하면 학살의 현장이나 공동체, 나눔의 정신을 상징화한 작품이 많은데 전 오월을 구체적인 인물사(史)로 만들고 싶었어요. 윤상원 열사와 함께 나머지 분들도 기억하면 좋겠다 싶어 열 여섯 분 모두를 한 화면에 담았어요. 그들을 기억하는 매개체가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어요. 이들 덕에 오월의 정신을 지킬 수 있었고, 살아 남은 자들도 그 마음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전시작은 먹으로 그린 ‘밑그림’으로 채색이 가미된 완성작은 5·18기록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또 다른 신작 ‘총 쏘지 않는 사람’은 고(故) 안병하 전 전남도 경찰국장 인물화다.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그는 꽃이 꽂아진 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통일열차 타고 베를린까지’에는 한반도기를 든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총비서, 국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시에서는 최근 출간된 ‘이름 없이 죽어간 브로크공-오월시민군 이정모’에 실린 표지화와 삽화도 함께 전시됐다. 책은 이씨의 동생인 공익활동가 이해모씨가 집필했으며 이 작가는 그의 삶을 일대기식으로 그린 10점의 삽화를 종이에 먹으로 그렸다.
4층 ‘정신병동 일기’는 나주정신병원에 입원 당시 환우들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병원에 있던 기간이 총 5년 정도였죠. 어느 날 병원에 있는 나에 대해 관찰을 했는데 결국 나는 화가였어요.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어 간호사 선생님께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했죠. 오래 알고 지낸 환우들도 별 거부 반응이 없어 그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그렸습니다. 병동에는 칼을 반입할 수 없어 연필이 닳아지면 간호사 선생님께 가져가 다시 깎아 사용했죠. 작품을 그릴 때나 예전에 그림을 볼 때는 힘들었지만, 몸이 건강해져 다시 보니 다 이겨낼 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에게는 병원이 바로 ‘집’이었을 터. 첫눈 오는 날 쇳창살을 붙잡고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는 축 처진 어깨의 환자, 동료의 흰머리를 뽑아주고 담배 한개비를 받아 즐거워하는 환자, 만화같이 생긴 소년, 즐거운 상상을 하는 사람,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까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그린 60여장의 드로잉은 인간 군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 병상을 지키며 그린 드로잉 작품 20점도 눈길을 끈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부터 시작해 5분전의 모습까지 담았다. 원망과 연민과 죄송함을 안고 병상을 지키며 그린 것들이다. 그림을 본 이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생각난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전시장엔 ‘결’이 다른 작품 한 점이 눈에 띈다. 1992년 작 ‘목포역의 새벽’이다. 파스텔 느낌의 따스한 기운이 담긴 그림을 오랜만에 꺼내보며 그는 꽃향기를 맡고 있는 노인의 모습처럼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 있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또 감로탱 형식으로 동학부터 현대사까지 그린 역사화 작업도 하려한다.
4일 오후 6시에는 오픈 행사가 열린다. 주먹밥을 같이 나누는 행사로 오창규의 노래, 안병하 치안감 아들의 이야기, 오월 어머니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진다. 작가는 전시 기간 중 3층 작가의 방에 머물며 스케치 작업도 하고 관람객들과 대화도 나눌 예정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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