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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김탁환 지음

by 광주일보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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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글밭, 오후에는 텃밭…초록빛 글을 심다

 

“강가에서 만나는 풍경이 그냥 풍경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 약한 것, 여린 것에도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야기를 발견하고 상상하면서 한 수 배운다. 제대로 공들여 발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진 대신 그림을 권하는 이들도 있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그리진 못하지만, 나무든 풀이든 고양이든 강아지 똥이든 수달 똥이든, 그 앞에서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두 시간씩 에버노트에 끼적거린다.”(본문 중에서)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를 썼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역사추리소설 ‘백답파 시리즈’를 시작했으며 ‘나, 황진이’ 등을 펴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끝으로 대학을 떠났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를 비롯 30편의 장편과 3편의 단편집, 3편의 장편동화를 냈다.

바로 김탁환 소설가다. 서울대 국문과를 입학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신화와 전설, 민담, 고전소설에 매료돼 서사의 세계에 빠졌다.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구축해온 김탁환 작가는 최근 서울에서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겼다. 자칭 초보농사꾼으로 초보 마을소설가로 새 삶을 시작한 그는 섬진강 들녘에서 글농사와 함께 논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텃밭도 일구고 있다. 그가 이번에 발간한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는 “첫 해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으며 서툴지만 한 걸음씩 디딘 마음들을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제철’이란 가장 알맞은 때를 말하듯이, 작가는 가장 ‘알맞은’ 것을 추구하는 모양이다. 그 알맞은 마음이란 “익숙한 글감에 젖어 늙어가지 않고 알고 싶은 세계로 다가가서 살피고 사귀며 다정한 글을 쓰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작가가 마주한 풍경과 그것과 결부된 마음을 ‘인디언 달력’처럼 구성하고 있다. 새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일기의 형식을 취한 글은 번뜩이는 문장과 감성이 가득하다.

1월 1일 ‘도착과 출발’이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다. “쓰고 싶은 장편이 있어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겼다. 가수는 노래 따라 가고, 소설가는 이야기 따라 간다고 했던가. 하염없이 걷고 원 없이 쓰겠다.”

소설가로서의 창작을 향한 열정뿐 아니라 농부로서의 고군부투도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시금치를 심으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거리를 떠올리며, 못줄에 맞춰 모내기를 하며 자신의 문장을 들여다본다.

서울에서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긴 김탁환 작가는 글농사와 함께 논농사도 짓고 텃발을 일구고 있다. 집필실 인근의 초록이 무성한 풍경. <해냄 제공>

자연의 섭리는 작가에게 엄정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나물과 독초를 구분하지 못한 것에서 정확하게 알고 쓰는 일이 중요함을 인식하며 길 위에서 맞닥뜨린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 겸손과 생태계의 순환을 생각한다.

또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도 시작한다. 생태 워크숍을 비롯해 이야기 학교 등 주민을 위한 강의도 진행한다. 아끼는 책을 토대로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고 책방지기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맘때인 4월 29일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집필실 ‘달문의 마음’에 처음으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북토크를 가졌다. 참석자는 모두 곡성 군민이다.(중략) 달문에 대한 소개부터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평생 책 한 권 읽지 못했으나 한없이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았던 조선 후기의 광대.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을 통해 가 닿을 사람의 마음이다.”

일기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문장에 스민 풍경과 고운 흙냄새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물이 흘러가듯 다채롭게 변주되는 글과 시와 판소리가 잔잔하게 마음을 다독인다. 아울러 베짱이도서관 박소영 관장이 그린 색연필화를 보는 맛도 무엇에 비할 바 없다.

<해냄·1만7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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