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 전 고려고 교사가 펴내…농사짓기부터 곡성 생활사까지
마을 애경사·문중이야기도…일상 기록물 중 가장 오랜기간 기록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했던 1958년부터 95세를 맞은 2021년 오늘까지.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 하루도 빠짐 없이 일기를 써 온 이희열(95)씨의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임형(63) 전 고려고 교사가 최근 펴낸 ‘이희열의 평생일기’다.
이씨는 1926년 곡성군 목사동면 대곡리 당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광주에서 직물공업조합에 취직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교사가 부족해지자 고향에 내려와 4년여간 임시 교사로 활동했고, 시험을 치러 목사동 서초등학교에서 정식 교사로서 4년여간 활동했다. 이후 1953년부터 해군으로 군생활을 했으나, 1956년 제대 후 자격 요건이 바뀌어 교사로 복직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의 일기는 그 이후인 1958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생애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순간이다. 임 교사에 따르면 이씨는 초교 교사 경험으로부터 일종의 ‘기록벽’이 생겼다. ‘농업일기’(農業日記) 표지를 단 일기장에 다음해 농사를 어떻게 할지, 씨를 어떻게 뿌릴지, 수입·지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 내용을 기록한 게 시작이었다.
임 교사는 “이씨는 농사일은 물론 마을의 애경사, 마을사람들 간 크고 작은 분쟁, 사건사고, 마을의 경치, 전주 이씨 문중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일기로 남겼다. 이씨의 인생사뿐 아니라 당시 생활사와 사회상까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고 설명했다.
“일기를 64년 동안이나 써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죠. 농업 방식부터 곡성 벽촌의 생활상, 당시 국·내외 뉴스까지 모두 기록돼 있어 농촌생활사, 기록사적인 가치도 큽니다. 전국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죠.”
임 교사에 따르면 농촌에서의 삶의 실상이 기록된 일기가 학계에 보고된 사례는 지금까지 4건에 불과하다. 평택시 신권식씨, 임실군 고(故) 최내우씨, 부산시 윤희수씨, 광주시 광산구 고(故) 김봉호씨 등이다. 임 교사는 이씨의 64년 기록이 지금까지 알려진 일상의 기록들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쓰인 기록이며, 기록 당사자도 현재 생존해 있어 내용 확인도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일기는 지난 1999년 재광곡성군향우회 회보에서 소개된 적 있으며,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지난 2018년 ‘곡성군사’에 소개되면서다.
교사생활을 하며 간간히 남도 문화유적지표조사 등 편찬 작업도 해 왔던 임 교사는 2018년 출판사 ‘역사만들기’와 협력해 ‘곡성군사’를 집필했고, 이때부터 이씨를 알았다고 한다. 이씨의 특별한 기록이 그대로 사라지는 게 아쉬웠던 ‘역사만들기’는 임 교사에게 이씨의 기록을 책으로 집필해 볼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아내와 사별한 이씨는 안타깝게도 3개월여 전에 낙상으로 허리를 다쳐 입원 중이다.
임 교사는 “일기를 책으로 옮기면서도 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며 “해방 이후 우리네 삶이 오롯이 담긴 이씨의 기록이 오랫동안 살아남고, 그 역사적 가치도 길이 보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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