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자영업자 얼마나
빚 지고 실업자로 전락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심화
여전한 이방인 외국인노동자
북한이탈주민의 궁핍한 삶
오징어게임은 빚에 쫓기는 평범한 서민들이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에 참가,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건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냉혹한 현실 사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오징어게임에 참가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직장에서 구조조정 당한 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고 사채에 시달리다 게임에 참가한 성기훈(이정재), 서울대를 졸업하고 다니던 직장에서 ‘영끌’·‘빚투’ 했다가 엄청난 빚만 직고 실업자 신세가 된 조상우(박해수), 낯선 타국땅에 온 뒤 정착하려다 사기꾼에 속아 정착자금을 모두 날린 강새벽(정호연), 악덕 사장에게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알리) 등의 삶은 우리 지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올해 광주·전남 지역민들 삶도 팍팍했다. 코로나로 경제적 불평등까지 심해진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힘든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은 올해보다 조금 ‘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내년을 꿈꾼다.
◇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오징어게임 속 명대사로, 게임 참가를 위해 모인 456명을 향해 경기 진행요원이 던진 첫 마디다.
12일 광주지법과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광주지법에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건수는 1835건으로,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모양새다.
광주지법의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1703건(2018년 1~10월)→1773건(2019년 1~10월)으로 늘었다가 1696건(2020년 1~10월)로 다소 줄어든 뒤 올 들어 증가폭이 커졌다. 이들 대부분은 자영업자·실직자들로 전전하다가 빚을 갚지 못해 법원을 찾는 경우라는 점에서 영화에서라면 게임 참가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파산 신청이 아니라도 영화 속 성기훈(이정재) 처럼 회사를 나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광주·전남지역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각각 13%, 11.4%. 10곳 중 1곳은 문을 닫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성기훈이 처음 시작했던 치킨집은 자영업의 대표 업종으로, 지역 민생경제 모니터링을 위한 체감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국토연구원 설명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말 내놓은 자료를 보면 여수의 경우 인구 대비 치킨집(275명 당 1곳) 수가 가장 많고 광주 북구는 개업 치킨집(3486곳)이 전국에서 3번째로 많다. 같은 기간, 북구는 치킨 집 폐업 수(2780곳)도 전국에서 2번째로 많았다. 현재 운영중인 치킨 집 수 10위 안에 여수(1023곳·4위),광주시 광산구(943곳·5위), 광주시 서구(940곳·6위)등이 올라 있다.
◇ ‘빚투’에 직장 못 구하는 실업자도 급증=드라마 속 조상우(박해수) 처럼 ‘빚투’ 했다가 엄청난 빚만 지고 실패한 사례나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경우도 지역 통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 속 상우는 증권회사 펀드매니저로 일하다 자신 뿐 아니라 고객 돈까지 끌어다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 60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빚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이다.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대출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 광주전남지역본부가 내놓은 ‘금융기관 여·수신 동향’만 보면 광주·전남 가계대출 잔액은 급증세다. 9월을 기준으로 2018년 21조5976억원 규모던 가계대출은 2019년 24조 5720억원을 늘었고 지난해에는 28조 566억으로 급증했다. 광주·전남 가구당 평균 채무도 5290만원이나 된다. 3년 전보다 24.5%가 늘었다. 회사에서 쫓겨나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전남지역 실업자는 5만 4000여명. 광주 실업률은 3.9%로, 2018년과 2019년 실업률(3.7%)보다 높아졌다.
그럼 영화 속 상우가 졸업한 서울대 취업률은 얼마나 될까. 대학알리미사이트의 지난해 서울대 졸업생 취업률은 70.9%. 전국대학 평균 63.4%보다 높고, 서울지역 평균 취업률 67%보다 높다. 전남대의 경우 지난해 졸업생 취업률은 60.1%, 조선대는 53.5%였다.
◇ 빈부차, 경제적 불평등, 현대판 계급 달라질 수 있나=드라마 속의 1번 참가자 오일남(오영수)은 성기훈(이정재)을 향해 “돈이 쉽게 벌어지나”라고 묻는다.
현실 사회에서 돈 벌기는 정말 쉽지 않다. 청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평등을 얘기한다.
KB 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10억원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는 2020년 말 기준 39만 3000명으로 2019년 말 35만 4000명보다 늘었다.광주도 2019년 5500여명에서 2020년에는 6300여명으로 늘었고 전남에서도 4800여명에서 5300여명으로 부자가 많아졌다.
부자만 증가한 게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매년 증가세다.
광주지역 기초생활 보장수급자는 2018년 7만2757명에서 지난해 8만4762명까지 증가했고 전남도 8만4819명(2018년)에서 9만2666명(2020년)으로 급증했다. 양극화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식도 많아진걸까.
기획재정위원회 복권위원회의 ‘2021년도 상반기 복권 및 복권기금 관련 정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복권판매액은 2조939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조6208억원)보다 12.1% 늘었다. 광주·전남 로또 판매금액도 2082억원(2016년)→2233억원(2017년)→2403억원(2018년)→2644억원(2019년)→1430억원(2020년 상반기)으로 계속 증가세다.
◇ 현실 속 ‘알리’들 삶도 비참=드라마 속 이주노동자 알리처럼 산재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못받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3분기 고용허가제로 광주·전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9800여명(광주2368전남7432)에 달한다.
최근 5년간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는 1321건으로, 산업재해를 입고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17년부터 올 7월까지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신청은 등록 외국인 3만3003건, 미등록 외국인 2053건 등 총 3만5056건이었다.
취업 등을 목적으로 입국했다가 외국인 등록증 등을 위조해 국내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불법 체류자도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20만 8971명이던 불법 체류자는 2017년 25만 1041명→2018년 35만 5126명→2019년 39만 281명→2020년 39만2196명으로 증가세이다.
최근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국내 불법 체류중인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대량으로 위조한 외국인등록증을 판매한 판매책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 낯선 땅에 정착하기도 쉽지 않은 새터민들=드라마 속 67번 참가자인 강새벽은 북한을 탈출해 국내로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다.
새벽처럼 북한을 탈출해 광주와 전남지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1208명(광주 564명·전남 644명). 낯선 땅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범죄자로 살아가게 된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정착 후 5년 간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에 준하는 생계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생계 급여는 물론 땀 흘려 번 돈이라 할지라도 한국 물정에 어두운 북한 이탈주민들은 사기를 당해 가진 돈을 잃는 경우도 많고 새벽처럼 좋지 않은 길로 빠져 범지를 저지르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보금자리를 가지기 어려운 북한 이탈주민에게 임대주택을 소개해주거나 1인 세대 기준 1600만원의 주거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낯선 땅에서의 정착하기란 녹록하지 않다는 게 북한 이탈주민들 얘기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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