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에 짓눌린 가족들 <하> 국가가 적극 나서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 참여··· 광주 10.33% 전남 9.63% 불과
‘독박 간병’에 가족 붕괴 위험까지··· 의료비 인정 등 대책 마련 서둘러야
광주지역 한 종합병원의 간병인 A(여·56)씨는 자신이 돌보는 입원 환자를 위해 목관을 통해 가래를 빼내고(석션), 코나 배에 삽입한 호스로 음식물을 공급하는 ‘경관 급식’(피딩), 투약 등의 행위를 매일 1년 넘게 하고 있다. 병원 입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로, 의료법(27조)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그래도 병원측 묵인하에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의 경우 간호사들이 하고 있는 욕창방치 체위 변경, 대소변 변기 등도 간병인들의 기본적 업무로 취급된 지 오래다.
가래를 빼내는 석션을 하다 환자가 구토를 하는 등 불편함을 호소해 간호사에게 요청을 하면 “모든 병원에서 그런 일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핀잔을 준다. 간호사조차 자신이 해야할 일을 간병인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병원과 보호자·간병인 모두 의료법 위반의 공범인 셈이다.
병실에서 간병인이 상주하는 나라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간병에 관한 것은 의료서비스로 병원이 해야할 역할이다.
하지만 입원 환자를 병원의 전문 인력이 아닌, 환자 보호자가 책임지고 돌보는 듯한 장면은 국내 병원 입원실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 간병인의 직업은 프리랜서나 다름없다. 환자와 일대일 계약으로 일하는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못한다. 관리감독기관도 없다.
하루 24시간 환자 곁에서 한눈 팔 시간도 없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잠시 밖에 나가 반찬거리를 산다던가 은행일을 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하루 15만 원 안팎, 한 달에 400만 원 훌쩍 넘는 간병비를 환자 가족이 부담하면서도 의료비로 인정받지 못한다. 장기간 병상에 누워 있는 가족을 돌보다 간병 파산·간병 살인 등 ‘간병비극’도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 간병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입장이지만 간호인력 확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답보 상태다. 간병을 건강보험에 포함시키려면 병원치료비와 건강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하다.
시민단체인 간병시민연대가 최근 연 ‘간호간병 문제 제도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온라인 토론회에서는 간병과 돌봄 책임이 오롯이 가족에게만 떠넘겨지고 국가는 책임을 방기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구고령화와 함께 1인 가구 수 증가, 가족기능 축소 등 사회인구 구조 변화로 국가가 더는 간병 문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간병 서비스의 제도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간병하는 짐을 가족에게만 떠안기는 ‘독박간병’ 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족 붕괴의 위험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 ‘건강벗’의 김원일 이사는 “간호인력 확보 방안이 없어 전문적인 간호서비스가 간병인에게 전가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범사업을 도입한 것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병실에 상주할 필요 없이 간호팀(간호사, 간호조무사, 간병지원인력)이 포괄적 전문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로, 2015년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래 첫해인 2015년 누적 7443병상에서 2016년 1만 8646병상, 2017년 2만 6381병상, 2018년 3만 7288병상, 2019년 4만 9067병상 그리고 2021년 8월 현재 6만1352병상으로 늘었다.
정부는 2022년까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을 10만 병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 하지만 ▲간호인력의 수도권병원·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 ▲비수도권병원·중소병원의 간호인력난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환자 수 감소 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당장, 올해 광주의 경우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참여대상 병상 대비 참여율이 10.33% 전남은 9.63%에 불과해 전국 평균 22.03%에 현저히 모자랐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의 공공적 공급이 떨어진다는 점, 특히 요양시설의 경우 지나치게 민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주성 간병시민연대 활동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간병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며 “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간병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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