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나는 너다’, 29일까지 오월미술관
‘빛-스미다’ 등 자화상, 5·18 ‘창’ 시리즈 눈길
인터뷰 후 작가는 사진 촬영을 위해 두 점의 대형 자화상 ‘사이’에 섰다. 100호 가득 작가의 얼굴이 담긴 ‘빛-스미다’(2018)와 상반신이 그려진 ‘문 앞에 어둠’(2015)이다. 옆모습에,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인물은 강렬하고, 화면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붓질도 인상적이다. 한 작품에선 빛이 쏟아지는 듯하고, 또 다른 작품은 어둠이 밀려오는지, 밀려가는 지 가늠하기 어렵다.
서양화가 정희승 작가를 개인전(29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오월미술관(동구 문화전당로 291-1)에서 만났다. ‘빛-스미다’를 표지로 삼은 도록을 받았을 때 ‘나는 너다’라는 전시 제목도, 자화상도 모두 강하게 다가왔다. 전시에는 두 작품 이외에도 작가의 자화상이 여럿 나왔다. 시간을 거슬러 유년시절의 초상까지도 등장한다.
온화한 표정, 조용한 말투, 스스로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가 전면에 등장하는 작품으로 전시회를 꾸리는 부담감은 만만찮을 터였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두렵기도 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며 “나의 작품에 대해 중간 점검을 하면서 결국은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됐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열린 ‘도원으로 가는 길을 묻다’ 이후 12년만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50여점이 나왔다. 대부분이 2015년 이후의 작업들이지만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판화작품, 1990년대 말 불로동 시절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주 전시작 중 하나는 인물화 ‘나는 너다’ 시리즈다. 인물들은 작가 개인에서 출발해, 허달용·김우성 등 동지애를 느끼는 동료 작가들로 건너간다.
“나라는 인간이 나로써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타자는 나의 또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걸 확인하는 게 사랑의 과정이구요. 동료들을 소재로 삼은 건 작가로서 늘 같은 고민을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이 곧 나로 보였기 때문이죠.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어떤 고통과 희열을 겪는지 가장 잘 아니까요.”
‘나와 너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시선은 주변을 넘어 우리 사회와 지구촌으로 시선을 확장, 숱한 인물들을 호명한다. 지난해와 올해 그린 12점의 연작 ‘나는 너다’에는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와 세월호 희생자의 교복과 신발, 그리고 푸른 눈물을 흘리는 작가의 자화상이 함께 담겼다.
“해마다 다가오는 오월의 이야기를 좀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나와 이 세상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죠. 우리는 서로 남일 수 없고 결국은 ‘나는 너’인 거죠.”
‘빛-스미다’에 대해 작가는 “예술가에게 영감이 스미는 순간, 무언가 번뜩하고 다가오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업하며 부딪치는 어려움이나 삶의 힘듦은 결국 내 고민을 드러내고, 내 고민에 당당히 마주할 때 적게나마 해결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보이는 건 힘든 결심이긴 하지만 분명 카타르시스도 있습니다. 자신의 진솔한 고백이 화면에 터져나오거든요. 화면에 눈물이 흐르는 건 제 자신이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의 울림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지요. 작품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입니다.”
조금은 결이 다른 작품 ‘안개’(2000)가 발길을 붙잡는다. 금남로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온화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발표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작가는 웃었다. 작품이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니, 작가에게는 기분좋은 일일 터다.
“전시 준비 기간 오래된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며 옛 기억들을 떠올렸네요. 대학 졸업 후 두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던 시절, 좋아하고 의지가 되는 선배들을 만난 불로동 시절의 작품들에선 제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 새삼스레 알게 되었구요.”
전시에서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황사’(1999)를 비롯해 목판화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김씨의 초상’(1984) 등 열혈 청년 작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그밖에 는 ‘5·18 버스’를 소재로 한 ‘창’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오월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버스에 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오월의 미래를 본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약자들을 향한 한결같은 시선은 그의 화폭에 여전히 살아있다. 세상을 떠난, 아들뻘 되는 노동자의 가방에서 발견된 컵라면을 소재로 한 ‘유품-흐르는 육계장’이 전하는 이야기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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