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두 번 즐기는 오일장의 맛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원래 좋은 것은 썩어도 어느 정도 본디의 맛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여수를 대표하는 음식에는 갓김치, 돌게장, 서대회, 장어탕 등이 있지만 준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양태 몸통에서 가시를 피해서 살을 발라내 먹는 것이 조금 귀찮아도 참 맛있는” 생선이 바로 준치다.
겨울 여수에서 맛보는 준치의 맛은 그만이다. 과일 식초와 막거리를 섞어 무친 회 무침 맛은 별미 중의 별미다.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코끝을 톡 쏘는 감각은 오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여수 오일장에는 어물전이 없다고 한다. 오일장 옆으로 수산시장이 있어서 한두 개 좌판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교동시장, 수산시장, 중앙선어시장을 지나다보면 여수의 대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전국 오일장에서 찾은 맛을 소개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먹거리에 진심인 26년 차 식품 MD 김진영이 펴낸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가 그것. 그동안 저자는 ‘폼나게 먹자’, ‘어쩌다 어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제철 식재료 발굴에 앞장서왔다. 이번 책은 그가 사계절을 찾아낸 전국 오일장의 맛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지난 3년 간 부지런히 시장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지역색만큼이나 시장의 분위기 또한 달랐다. 그중에서 “손님과 상인 간의 넘치는 ‘정’을 느꼈던 시장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흥정’이다. 흔히 주고받는 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리듬인 흥정이 있어야 시장은 활기가 돌고 풍요롭다.
순천에서는 다양한 밥도둑을 만났다. 2, 7일은 아랫장이 서는 날인데, 상설시장인 중앙시장이나 순천역 앞 장이 썰렁할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이곳에서 살 수 있는 망둥어과 생선인 ‘개소겡’은 외모와 달리 구수한 매력이 있다. 저자의 눈에 개소겡은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괴생물체와 같은 외형으로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대갱이’라고 부른다.
“나무 망치로 딱딱한 대갱이를 두들기면 껍질은 가루가 되고 허연 속살이 드러난다. 허옇게 된 개갱이의 포를 뜯어 매콤하게 무쳐서 먹는다. 그 맛은 황태나 북어 채를 무친 것보다 깊고 긴 여운의 구수함이 있다. 여기에 전라도의 손맛이 더해지는 순간, 밥도둑계의 끝판왕이 된다.”
완도 오일장은 5와 0이 들어가는 날에 선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낯선 이름의 ‘너푸’라는 해초다. “된장국을 끓이면 너푸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맛이 있다. 너푸, 넓태라 부르지만 실제 이름은 넓패다. 현지 아니면 맛볼 수 없어 완도나 진도 등에서는 인기가 있다.
완도의 감태는 요즘 들어 부쩍 찾는 이들이 늘었다. 현지 사람들은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풋고추, 다진 마늘, 생강 그리고 잘 숙성한 멸치액젓에 고춧가루를 개어서 버무리면 완성된다”고 한다. 해초 향이 더해진 새콤함은 밥을 연신 부르는 특별한 맛이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고장인 하동은 오른쪽은 여수와 광양, 아래와 왼쪽은 남해와 사천이 자리한다.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화개 오일장은 바다에서 온 것들로 장을 채운다. 섬진강 재첩을 비롯해 바다의 바지락, 대합, 우럭조개가 행인을 손짓한다. 이곳에선 남해의 우럭조개를 많이 받는다. 살을 발라내고 수관 부분을 손질해 미역국과 숙회 무침을 만들면 최고의 맛이다.
또한 완주의 육회비빔밥, 겨울 통영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전갱이, 포항에서 맛보는 장치회도 소개돼 있다. 아울러 진정한 여름 맛이 깃든 양구, 기찻길 따라 즐기는 춘천의 시장길, 겨울엔 대개 여름엔 복숭아로 유명한 영덕 등 책 갈피마다 펼쳐진 오일장의 맛은 오감을 즐겁게 한다.
<상상출판·1만6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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