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 옮김
2017년 4월 69세의 의사 데이비드 타오는 시카고 오헤이 국제공항에서 예약을 과도하게 받았다면서 좌석을 포기하라는 항공사의 요구를 거절하다 강제로 끌려나갔다. 보안요원 3명이 비행기 복도를 따라 질질 끌고 가는 상황에서 그는 좌석 팔걸이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고 코뼈와 치아 두개가 부러졌다. 항공기 탑승 자들이 SNS에 영상을 올리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의 분노를 샀지만, 사람들은 항공기 탑승객의 ‘침묵’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항공기에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상황을 촬영하고 나중에야 SNS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지만 당시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며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여성 승객 1명뿐이었다. 누구도 보안요원의 부적절한 행동을 막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부정을 목격할 때 개입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누군가 나서겠지 생각하며 굳이 자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경향을 정신분석학자들은 ‘책임분산’이라 칭한다. 책임분산은 희생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함께 있는 숫자와 반비례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방관자 효과’라고 부른다.
암허스트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캐서린 샌더슨의 ‘방관자 효과-당신이 침묵의 방관자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나비 효과’는 다양한 사례와 심리학 연구·실험을 분석해 불의가 발생했을 때 왜 소수만 타인을 돕고, 이외의 사람들은 침묵하는지 살펴본 책이다. 최근 당사자의 자살로까지 이어졌던 광주 고등학교의 ‘따돌림’ 역시 가해 학생들의 잘못과 함께 다수 학생들의 ‘침묵’도 큰 이유였고, 우리 모두 이런 ‘침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행동 앞에서 침묵하려는 자연스러운 본성 이면에 깔린 심리적 요인을 설명하고 또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당시 감옥에서 미국 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들에게 자행했던 고문과 치욕적인 행태를 고발한 조 다비 등 놀라운 도덕적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의 사례와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소개한다.
책의 전반부는 사람들이 나쁜 행동에 개입하는 상황과 심리적 요인,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을 보고 침묵하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이들 요소가 학교에서의 따돌림, 대학에서의 성폭력, 직장에서의 비윤리적 행위 등 특정 상황에 놓였을 때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반응하는 지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수의 사람이 성향과 관계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 많은 도덕적 저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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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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