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문화, 장르가 되다
주체 세력으로 등장한 팬덤
대중문화 지형에 큰 영향
음원시장 좌우하며 스타 키우기
중장년층 팬덤 급성장
“내 스타는 내가 키운다!” 팬덤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생일을 맞은 스타를 축하하기 위해 단체 헌혈을 하고, 기업에 요청해 광고 모델로 발탁하게 하는 등 팬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광주에서 직접 만난 팬들의 활동 모습,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팬덤, 대중문화 전면에 나선 중장년 팬덤까지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팬덤 문화를 들여다본다.
◇ ‘스타를 키우는 사람들’ 팬덤의 진화
가수나 배우, 운동경기나 선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팬(Fan)’이라 칭한다. 여기에 집단을 뜻하는 ‘dom’을 합성해 ‘팬덤(Fandom)’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쉽게 말해 팬들의 집단이다.
요즈음의 팬덤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스타의 사진을 사다 모으며 음반을 구매하고 콘서트나 방송이 있으면 찾아가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스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소비의 주체가 되어 사회현상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팬덤의 활동은 나날이 진화돼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의 팬덤 문화가 됐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변화는 팬층의 다양화다. 과거에는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10대 위주였다면, 지금은 중장년층의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맹목적으로 연예인들을 좋아한다며 10대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던 부모세대가 이제는 직접 현장에 나와 젊은 세대와 같이 스타를 응원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생겨났다. 10~20대들이 갖지 못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부, 지하철 전광판 광고, 앨범이나 굿즈 등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 복잡하다는 이유로 배우지 않던 디지털 기술까지 직접 배워가며 음원 스트리밍을 하는 등 아이돌 팬덤 못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광주전남총괄 강미정씨는 “최근에 가수 임영웅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 위해 ‘만원의 행복’ 모금 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는데 200만원을 흔쾌히 내주신 팬분이 계셨다”며 “연세가 드신 그 분은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런 지원 외에 특별한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시며 후원금을 내주셨다”고 전했다.
조직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팬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한 이들은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스타를 광고 모델로 기용해 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 세계 곳곳에 BTS 아미들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Army)’는 K-팝 팬덤을 대표한다. ‘아미’는 영어 단어인 군대(army)처럼 ‘BTS와 팬이 항상 같이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BTS의 성장은 아미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팬덤의 역할이 크며 팬덤 아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BTS 이름으로 기부나 봉사활동, 음원 스트리밍, 광고 제품들을 적극 소비하는 활동은 여느 팬덤과 마찬가지지만 팬덤 아미는 세계 곳곳에 포진돼 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여러번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적인 스타임을 입증하고 있는 BTS는 최근에도 신곡 ‘버터(Butter)’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후속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배턴 터치를 했다가 다시 또 ‘버터’가 1위를 차지하며 10주 연속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8월7일자 차트)
이같은 결과 역시 팬덤 아미의 지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빌보드 핫 100 순위를 산정하는데는 음원 다운로드 양과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방송 횟수 등 다양한 지표가 반영된다. ‘버터’는 음원 발매 일주일만에 197만5000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이틀만에 2만5000장을 추가하면서 200만을 돌파했다. 올해 발매된 앨범 중 가장 높은 판매량으로 알려졌다.
팬덤 아미의 강력한 파워는 스타와의 유대감이 크게 작용한다. 스타들에게 있어 팬이 소중한건 당연한 거지만 BTS의 팬 사랑은 유명하다. 팬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을 네이버 V앱을 통해 2015년부터 방영했다. 현재는 에피소드당 조회수가 1000만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예능 콘텐츠가 됐다. 팬카페와 SNS에서 팬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 “나이야 가라” 미스터트롯 콘서트 현장
팬덤 문화를 바꾼 대표 사례가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다. 미스터트롯은 결승에 오른 Top7의 팬들이 많아지면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한여름에 만난 미스터트롯 콘서트 현장은 컬러부터 화려했다. 스타를 상징하는 컬러의 옷을 맞춰입고 응원봉, 슬로건, 포토카드, 명찰, 머리띠, 인형 등을 구입해 콘서트 관람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인근 상가 건물들은 스타를 응원하는 대형 사진과 응원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로 도배됐고, 일부 상가는 팬카페 회원들이 대여해서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임영웅의 공식팬카페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광주전남 회원들이 마련했다는 쉼터 앞에서 만난 두 명의 중년 여성은 동서지간이었다. 여수에 살고 있는 ‘형님’ 임혜숙(61)씨와 부산에 사는 ‘동서’ 유금자(58)씨는 전날 여수에서 하룻밤 지낸 후 임영웅을 보기 위해 미스터트롯 콘서트장을 찾았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현장에 도착했다는 김향순(61)씨와 딸 이현미(35)씨는 각각 ‘엄마도 영탁’ ‘막내딸도 영탁’이 적힌 파랑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저녁 7시30분에 시작되는 마지막 콘서트 표를 예매했다는 모녀는 1차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착해 소풍나온 학생들처럼 밝은 표정으로 현장 분위기를 즐겼다.
두 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현장을 찾은 김선미(57)씨는 딸들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손을 ‘ㄱ’자 모양으로 굽히며 “건행” 인사를 건넸다. 임영웅이 팬들에게 자주하는 인사말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줄임말이다.
콘서트 현장에 유독 눈에 띄는 복장을 한 팬. 백설공주 코스프레를 한 차선민(50)씨는 ‘이찬원백설공주’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찬원님을 사랑하는 팬심”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부터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발자취를 따라 가수가 다녔던 곳을 다니며 영상을 촬영해 올리고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영탁 팬들이 모여 콘서트를 기다렸다. 일명 ‘영탁존’이라 불리는 이곳은 영탁 팬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를 콘서트가 열리는 사흘동안 개방하면서 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했다.
영탁의 공식 팬카페 ‘영탁이 딱이야’ 광주전남 지역명은 ‘탁오빠 옆에 뽀오짝’이다. 팬들간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탁의 마음과 뜻을 같이해 회원들간의 사이도 매우 좋다. 먼 길을 달려온 타 지역 팬들에게 선물이나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미스터트롯 다른 멤버들의 팬들과도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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