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학교폭력에 극단적 선택
피해자가 모든 것 떠안는 구조
학생들이 믿고 공익신고 하게
경찰·교육당국 관리 나서야
최근 광주·전남지역에서 학교폭력 피해가 수면 위로 줄지어 떠오르고 있다. 오랜 기간 지속된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소년들도 생겨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피해자에 대한 관리 부실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10년 전부터 내놓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실적 쌓기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끊이질않고 터져나오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경찰·교육당국 등이 공동으로 학교폭력 전수조사와 학교폭력 공익 신고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광주·전남경찰청과 교육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 29일 광주시 광산구 야산에서 고교생 A군이 오랜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B양이 지난 7월 31일 진도에서 학교폭력을 암시하는 유서 형태의 메모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군은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었다’, B양은 “담임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학교폭력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메모를 남기면서 경찰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 몰래 뒷담화를 했다는 이유로 후배 여학생을 불러 위력을 과시하며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폭력 영상을 촬영해 또래 친구들에게 보낸 10대 중학생들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매년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진행됐지만 아예 학교폭력 현실을 담아내지도 못했고 더 이상의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도 막아내지 못했다. A군이 다녔던 학교에서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는 단 한 명도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없었다. B양이 다녔던 학교는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 응답이 나왔지만 올해도 학교폭력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실태조사가 학폭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0년 전인 지난 2012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범정부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의 학교폭력이 여전한데다, 이들 대책이 학교폭력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껍데기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내놓은 단기 처방, 일회성 강연 위주의 행사성 예방교육, 실적쌓기식 실태조사 등이라는 혹평도 나왔다.
황한이 ㈔학교폭력가족협의체 광주지부 센터장은 “교육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온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단 화해 시키고 보자’는 식으로 마무리하려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모든 걸 떠안아야하는 구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여전하다. 교육당국이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문항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실태조사의 목적에 맞는 문항들이 주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을뿐 아니라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살펴볼 수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높이려면 문항을 공개함은 물론 문항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 공익 제보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학교폭력 피해자 혹은 보호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양상이 다양화되면서 변화를 빨리 체감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고형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는 “학생들이 믿고 공익제보를 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들이 신뢰감을 갖춰야 한다”면서 “최근에는 기성세대들이 쫓아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일선 교육 현장의 교사와 부모의 역할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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