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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기자

시내버스 기사들 화장실 가기도 빠듯…생리현상 참아가며 운전대 잡는다

by 광주일보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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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영제의 그늘 시내버스 기사들 <상> 불안한 ‘시민의 발’
지하철 공사에 전용차로 사라지고 속도 줄어도 배차시간 그대로
6분간 짧은 휴식 후 운행…“휴식은커녕 물한잔 마시기도 겁나요”
열악한 근무 환경 속 골목길서 생리현상 해결하고 쫓기듯 운전도

20일 오전 8시께 ‘수완 03번’ 버스 운전기사 송연수씨가 지하철 2호선 공사가 진행 중인 광주시 동구 산수오거리 부근을 지나고 있다.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 기사들이 과로와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매일 지옥 문턱을 드나들고 있다. 준공영제가 시행된 지 14년이 지났음에도, 버스기사의 열악한 운행 실태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대형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 무한정 방치되고 있다. 

지하철 공사로 전용차로가 사라지고 도심 차량 속도도 낮아졌지만 시내버스 회사들이 정해놓은 버스 1대 배차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휴식시간은 커녕, 대소변과 허기짐까지 참아가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시내버스 기사들이 부지기수다.

사고라도 날 경우 교통사고 처리비를 버스기사에게 덤터기 하는 불공정한 관행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50대 버스기사는 이같은 관행에 힘들어하다 극단적 선택〈광주일보 6월 23일 6면〉을 하기도 했다. 
시민의 발 노릇을 하는 시내버스기사들이 불편한데, 시민들은 편할까. 

광주일보는 시내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준공영제로 세금을 투입하는데도 바뀌지 않고 있는 기사들의 복지 실태 등을  3차례에 걸쳐  싣는다. 

“운행 전에 커피요? 꿈도 못 꿉니다. 물도 마시기 겁나는데, 커피는 무슨?!”

20일 오전 7시께 광주시 남구 송암동 시내버스 임시 차고지에서 만난 시내버스 기사 송연수(58)씨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출발하자는 기자 요청에 이렇게 반문했다. 송씨는 수완 03번 노선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기사다.

수완 03번 버스는 급행 노선으로, 운행 거리는 38㎞다. 광주 전체 101개 노선 중 가장 길다.  

광산구와 남구 차고지를 출발해 동구, 북구 등 광주지역 4개 구를 돌아다니는데 운행시간만 110분이다. 휴식 시간은 딱히 정해진 건 없지만 요즘엔 꼬박 1시간 50분 동안 허리 한 번 못 펴고 운전대를 잡을 때가 많다. 시내버스 기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대표 노선이기도 하다. 

운행거리도 시내버스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긴데다, 대학교, 고등학교 등 정차하는 정류장이 많아 탑승객 수도 많다. 고된 노동만큼 정신적 피로감도 높다. 버스에 오르내리는 천태만상 승객들을 모두 감당하며 운행해야 한다.

오전 7시 10분께 송원대를 시작으로 송씨의 버스를 탔다. 광주대, 동성고, 대성여고, 대광여고 버스승강장을 지나니 탑승객들로 버스가 가득찼다. 대학교·고등학교 방학으로 탑승객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송씨는 “탑승객이 많은 흑자 노선이다. 빨간색(급행) 버스이다 보니 정차하는 승강장이 비교적 적어 탑승객들이 많은 편”이라며 “정차하는 승강장은 적지만 탑승객이 많고 운행 거리가 길다보니 빠르게 운행해야 해 신경쓸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고 말했다.

송씨를 비롯한 모든 버스기사들이 한시도 맘을 놓아서는 안되는 게 지하철 공사다.  조선대와 산수오거리, 교대 등을 지하철 2호선 공사가 진행 중인 구간은 갈 때마다 정체를 피하지 못한다. 차선도 좁아져 옆 차선에서 주행 중인 차와 맞닿을 듯 아슬아슬한 운전을 감수해야한다. 

송씨는 “최근 지하철 2호선 공사가 시작되면서 버스전용 차로가 사라졌고 차선도 줄어 교통정체도 한층 심해졌는데 운행 시간은 그대로”라고 했다. 회사가 정한 운행 시간인 110분 안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 시행된 안전운전 5030과 어린이보호구역이 늘어나고 과속방지턱 등이 증가한 점도 운행시간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도 지하철 2호선 공사 중인 남구청 일대를 지나면서 가다서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송씨는 승강장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버스 내부 시계에 눈을 돌렸다. 운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휴식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다. 휴식시각도 없이 운행했다가 자칫 졸음 운전이라도 하게 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운행 후 1시간이 지난 오전 8시 10분께야 비로소 경신여고에 도착했다. 

이후 송씨는 “출발지로 다시 향해야하는 운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운행을 서둘렀다. 도착 차고지까지 5개 정류장만 남겨둔 상태였다. 오전 8시 51분. 송씨의 휴대전화 알람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다음 운행 시간인 오전 9시 1분까지 10분 남았다는 신호다. 송씨는 마지막 정거장을 지난 뒤 차고지에 정차하지 않고 곧바로 차를 돌려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송씨는 “9시 1분에 재출발해야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뒤에 배차된 버스들이 출발하지 못한다”고 했다. 송씨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가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곧바로 버스에 탑승했다. 결국, 휴식시간은 커녕, 생리 현상도 편히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1시간 50분을 되돌아가야 하는 셈이다. 

송씨 뿐 아니다. 광주 시내버스 기사 2460여명이 이같은 빠듯한 운행 시간을 지키느라 생리현상도 참아가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시민의 ‘발’ 노릇을 하는 만큼 시내버스 기사들의 근로조건은 승객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지만 광주시 등 교통당국의 관심은 높지 않다. 준공영제를 내세워 버스기사들의 복리를 위해 일정 비용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정작 버스기사들 근로조건 개선에 사용되는지 여부를 살피지도, 개선하지도 않고 있는 게 현재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민원도 끊이질 않는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광주시에 접수된 시내버스 관련 민원은 321건.승강장 통과 137건, 불친절 64건, 승·하차 거부 75건 등이다. “4시간 버스운행을 하면서 허리 한 번 마음대로 못 펴고 식사도 제 때 못하는데 어떻게 시민들 한명한명에게 친절할 수 있겠냐”는 노동계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전국자동차노조 광주지역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버스기사의 노동여건은 승객 안전과 직결 되지만, 사측과 광주시에서는 운행시간을 늘려 버스운전 기사들의 휴식을 담보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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